동양과 서양을 나누는 기준은 뭘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나만의 기준이 생겼는데, 바로 국물 사랑의 여부다. 아시아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수를 즐기는데 신기하게도 인도에서 뚝 끊긴다. 인도에서 국수를 아예 안 먹는 건 아니지만 주류 음식에선 한참 떨어져 있다. 대신 인도엔 수많은 커리가 있다. 축축한 음식이 어쨌든 대세다. ‘국물 사랑’을 기준으로 본다면 인도가 서양과 동양의 중간쯤이면서 아시아의 끄트머리가 아닐까 싶다. 아세안국가들의 국물 사랑은 대단하다. 섭씨 40도의 무더위에도 땀 뻘뻘 흘려가며 국물을 즐기니 말이다. 그래서 세계 최고의 국물 사랑은 아세안국가라고 할 수밖에 없다. 아세안국가들의 대표 국물 요리를 알아보자.
아세안의 국물 요리는 코코넛밀크와 신맛, 이 두 가지로 요약된다. 흔하고 맛과 영양도 풍부한 코코넛 밀크를 즐겨 사용하며 ‘열을 내리고 살은 덜 찌게 한다’고 믿는 신맛을 선호한다. 세계적인 미식 국가 태국의 국물 요리는 두말할 것도 없이 ‘똠양꿍’이다. 다른 나라엔 비슷한 것조차 없는 ‘독보적인’ 맛과 향을 자랑한다. 쓰이는 재료가 독특하니 독특한 맛이 날 수밖에 없다. 레몬그라스가 똠양꿍 향의 핵심이다. 레몬그라스는 레몬과 전혀 상관없는 벼과 식물이다. 하지만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레몬 향이 그윽하게 풍겨 나온다. 생강 사촌 갈랑가도 독특한 향에 한몫한다. 레몬그라스나 갈랑가는 국물 속에 떠다니는데 향을 도울 뿐 먹지는 않는다. 딱딱하고 불친절한 식감이라 알아서 뱉게 되어 있다.베트남은 쌀국수의 천국이라 상대적으로 국물 요리가 약하다. 먹는 거에 진심인 베트남 사람들이다. 상대적으로 약하다고 했지 별 볼 일 없다고는 안 했다. 태국에 똠양꿍이 있다면 베트남엔 깐쭈어가 있다. 깐(Canh)은 베트남어로 “국”, 쭈어(Chua)는 “시다”를 뜻한다. 한 마디로 신 국물이란 뜻인데 베트남의 대표적인 국물요리다. 전통적인 깐쭈어는 민물고기에 각종 양념을 넣어 끓인다. 신맛은 토마토와 타마린드로 내는데, 타마린드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사랑받는 식재료 중 하나다. 깐쭈어는 민물고기의 깊은 감칠맛과 톡 쏘는 타마린드의 상큼함이 황금 비율로 섞여 있다. 깐쭈어 한 그릇이면 밥 한 그릇 뚝딱, 진정한 밥도둑이다.
피시헤드커리는 다민족이 어울려 사는 싱가포르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남인도에서 넘어온 매운 커리에 중국인이 죽고 못 사는 생선 대가리가 합체한 ‘합작품’이다. 코코넛의 달콤함이 가득한 매운맛은 우리네 닭볶음탕을 생각나게 한다. 생선은 주로 도미를 쓰는데 밥에도 비벼 먹고 빵을 찍어도 먹는다. 먹는 방식에서도 동서양의 문화가 반반씩 잘 섞여 있다.
캄보디아의 삼로까꼬는 과장 좀 보태면 캄보디아의 모든 고기와 풀들이 총동원된 음식이다. 캄보디아의 공용어인 크메르어로 “삼로”는 “국”을, “까꼬”는 “섞다”를 의미한다. 그린 바나나, 잭푸릇, 그린 파파야에, 태국가지, 호박, 호박잎, 줄콩 등 12가지 채소가 들어간다. 커리 페이스트와 유사한 끄르엉은 레몬그라스, 마늘, 강황가루 등으로 만들어진다. 커리와 비슷하나 훨씬 묽게 끓인다. 동남아시아의 젖줄 메콩강과 아시아 최대 민물 호수 톤레삽이 있는 나라다. 세계적인 유적 앙코르와트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풍요가 문화를 만든다. 보통은 생선이 들어가면, 고기는 넣지 않는데 삼로까꼬는 돼지고기나 닭고기까지 추가한다. 그야말로 종합선물세트 국물 요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