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지난 10월 말 워싱턴 디씨에 도착해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이하 CSIS) 내 한국실 (Korea Chair) 소속 Visiting Fellow로 활동 중입니다. 활동 보고가 늦어진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우선 디씨에 오기까지 국내에서의 준비는 주로 관련 서류를 마련하는데 할애하였습니다.
재단측의 요구에 따라 간단한 건강검진을 하고, 범죄사실이 없음을 확인하는 서류를
경찰서에서 발급받고, 여행자 보험에 가입하고, 마지막으로는 주한미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 받았습니다. CSIS는 워낙 워싱턴 정책 서클의 오랜 터줏대감이라 대사관 영사과 직원들도 바로
들으면 아는 기관입니다. 저를 심사한 직원은 아주 반가워하면서 제 비자 신청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더군요.
항공권 날짜 지정이 좀 골치 아팠었습니다. 비자
발급 때문에였는데요. CSIS측에서 제가 대사관측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보내줘야 하는데, 그 원본이 언제 도착할지 몰라서 말이지요. 절차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처음에는 서류의 스캔본을 먼저 보내주는데, 이를 이용해 대사관에 비자 신청을 하구요.
인터뷰 당일에는 원본을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원본이 도착한 시점과 인터뷰 시점이 잘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대사관 비자 신청 홈페이지를 잘 살펴보시면 긴급한 사정이 있는 경우, 인터뷰 신청
날짜를 앞당길 수 있도록 하는 메뉴가 있습니다. 저는 이 메뉴를 잘 이용하여, 제가 실제 신청한 인터뷰 날짜보다 더 빨리 인터뷰를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재단측의
배려 하에, 항공편을 확정했습니다.
그 외 혹시 디씨에서 숙소를 구하는데 필요할까 싶어서 은행 내 제 자산(?)을 최대한 끌어 보아, 이 내용을 증명하는 서류를 영어로 몇 부 발급 받아놓았습니다.
은행 창구에 요청하면 영어로, 또 자산을 달러로 계산하여 표시해주니 참고하시구요.
아울러, 이 서류를 발급 받는 그 날 하루는, 그 서류에 표기되는 모든 계좌의 거래가 동결된다고 하니 이 또한 참고하세요~
디씨에 도착해서는 갈 곳이 마땅치 않아, 저는
디씨 Dupont Circle 지역 내 저렴한 호텔에 5박 정도 예약을
해놨었습니다. 참고로 디씨 지역 내 호텔들은 시설 대비 가격이 비싼 편입니다. 그러니 가급적 이른 시점에 예약할 것을 권합니다.
저는 평일 정오께 도착을 했구요. 그날 호텔에
체크인을 하자 마자, 바로 Dupont Circle 인근에 있는
Bank of America에서 입출금 계좌를 열었습니다. 혹시 몰라 여권 외,
재단측이 발급해준 여러 증명서를 지참했는데 직원 말로는 여권 정도면 충분하다고 하더군요. 여기서 중요 포인트는, 처음에 친구 혹은 친지의 주소 등 미국 내 주소가 필요하니 준비를 해두십시오.
나중에 계좌를 트고, 이사를 가게 된 후 주소를 수정하면 됩니다. 미국 기업의 고객지원 서비스가 그닥 좋지 않다는 것은 많은 분들이 아실텐데요. 저도 시행 착오
끝에, 직원과의 온라인 채팅이 가장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전화 연결이 만만치 않거든요) 채팅을 통해 직접 방문을 하지 않고 거의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은행 계좌를 열면 온라인 뱅킹 ID 등을 만들도록
권유합니다. (거의 강요라고 봐야지요) 아울러, 웬만하면 종이로 발급하는 개인 체크는 권하지 않습니다. 발급 기간도 오래 걸리고
(2주), 별도의 비용을 요구합니다. 저는
기본으로 발급해주는 4장 짜리 개인 체크만 받고, 별도의 체크북은 신청하지
않았습니다. 다행이, 아직까지 체크를 발행할 일이 없었습니다.
은행에서 주는 체크 카드는 임시 카드 (temporary card)인데,
계좌 신청시 기재한 주소로 permanent card를 보내주니 주소 기입에 유의하셔야
겠습니다. 또한 온라인으로 거래를 하는 경우, 카드가
temporary card가 permanent card로 교체가 된 후에는 카드
정보를 업데이트해줘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승인 거절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저는 서울서 craigslist 등으로 워싱턴
디씨 내 단기 체류가 가능한 원룸을 많이 검색해 왔는데요. 막상 현지에 도착해 전화로 문의해보니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한 정보와는 많이 다른 경우를 발견했습니다. 서울서 집을 미리 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정보를 올린 업체들이 방문 요청을 해서 직접 오는 사람이 아닐 것 같으면 이메일 회신 등에 그닥
적극적이지가 않습니다. 아울러 인터넷에 표시된 가격은 1년 계약을 기준으로
적은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그것보다 더 높다고 보셔야 합니다. 6개월짜리 계약은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에 월 50-100 불 정도 추가로 받습니다.
워싱턴 집값은 아주 높기로 악명이 높습니다. 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오셔야겠습니다. 가격이 괜찮다 싶으면 거의 쓰러져 가는 수준의 집이 많구요.
아, 여기는 깨끗하고 안전하겠다 싶으면 가격이 어마어마 합니다. 저는 최근 들어 개발이 한창인 Logan Circle 지역에 원룸을 구해 살고 있는데요.
이 곳은 최신식 아파트와 버려진 건물이 공존하는 지역입니다. 집값을 아끼기 위해
룸메이트, 하우스 메이트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나마 가장
활동이 활발한 Craigstlist를 보면요. 3층 짜리 단독주택의
경우, 집주인이 세를 놓을 수 있는 방이 4-5개 정도 있는데요.
하우스 메이트들이 다 여자인 경우가 드뭅니다. 남, 녀가 섞인 경우도 많지는 않구요. 아무래도 남자들만 모여 사는 곳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재단 선발 인턴, 펠로우 등이 여자분들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혼자 원룸을 구하는 경우, 집세, 보증금 (이건 건물 관리 업체마다 가격이 제각각입니다),
세입자 보험 (6개월 동안 100불 이하),
관리비 (수도, 가스, 전기 등 건물마다 다 다릅니다), 그리고 세탁기가 방에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경우,
공동 세탁기를 쓰는 비용 (1회 세탁시 2불
정도 합니다) 정도가 추가로 들어간다고 보셔야 합니다.
재단과 공동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연구소 대부분이 디씨 시내에 있으니 아무래도 시내에
집을 구하는 게 좋겠지만, 비용이 높은 부분을 감안해야 합니다. 같이
온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윌슨 센터의 경우, 센터 추천 housing이 있던데요. CSIS는 그러한 정보가 없습니다.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하숙 혹은 기숙사 생활이 있는데, 이 부분은 제가 잘 알지 못해 공란으로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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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 생활은 회사 생활과 거의 비슷합니다. 9시 출근, 5시 퇴근 정도의 생활이구요. CSIS는 정책
연구 활동에 중점을 두는 곳이라서 현안 진단 위주의 행사가 굉장히 잦습니다. 지난 해 통계에 따르면 연간
1700건의 행사를 치른다고 합니다. 홈페이지에 공지되지 않는 행사도 아주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아직도 CSIS를 알아가는 단계이지만,
여기는 CSIS라는 큰 우산 아래 여러 작은 사업가들이 모여 독립 사무소를 운영하는
느낌이 큽니다. 각 프로그램별로 독립적인 프로젝트를 운영하구요. 종종,
프로젝트 주제가 광범위해 복수의 프로그램이 협조하여 연구 및 행사를 진행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독립적으로 돌아갑니다.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운영 여부도 프로그램 장에게 크게 좌우됩니다.
각 프로그램별로 직원간 위계질서가 잘 잡혀있습니다. 주로 장의 역할을 하는 분은
학계 출신은 박사, 비학계 출신은 정부 혹은 관련 업계 (기업)
경력이 상당한 분들입니다. 그 밑에 연구를 보조하고 프로젝트 행정을 맡는
Fellow와 Deputy Director 등의 보조 직원들이 있구요.
이 분들은 거의 99% 석사급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밑에 추가적으로 연구 보조/프로젝트 행정 담당자인 Research Associate, Research
Assistant가 있습니다. Associate과 Assistant의 차이는 석사 학위 소지 여부라고 들었습니다. 예외도 있겠지요. 이렇게 정식 직원이 있고, 그 밑에 각 프로그램 별로 2-4명 정도의 무급 인턴을 채용해 여러 업무를 나눕니다.
CSIS는 설립 당시에 국방/안보쪽을 주요 아젠다로
책정하였는데,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지금도 그 자취가 큽니다. 많은
이벤트 중 상당 부분이 국방/안보쪽이구요. 아까 말씀드렸던 여러 작은
사업가들의 전공 분야도 국방 및 안보가 굉장히 많습니다. 크게 보면 국방/안보, 아시아 지역 프로그램, 개발 협력 프로그램 정도의
세 갈래가 있습니다. 저는 아시아 지역 프로그램 내 설치된 한국실 내 빅터 차 박사님의 지도 하에 북한을
포함한 '불량국가'에 대한 미국 정책 형성 과정과 이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을 어떻게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질서 안에 들여올 것인가를 주제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제가 워싱턴 안의 많은 싱크탱크들이 개최하는 행사를 다녀본 경험으로, 요즘 싱크탱크들의 화두는 마케팅인 것 같습니다. 거의 모든 연구소들이 웬만한 행사는 홈페이지를
기반으로 무료 생중계를 실시합니다. 이 때문인지 멀티 미디어 장비가 화려합니다. 무대도 화려한 편입니다. 또 행사 중에도 지정 인턴들의 트윗을 통해 토의 내용을 요약해 바로
바로 내보냅니다. 이러한 SNS 활동을 연구소마다 경쟁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활동에 비해 실제 행사에
참석하는 관객은 대부분 이 분야에 오래 종사한 중년 이상의 정책 전문가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제
토론 이후 이뤄지는 청중과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꽤 전문적인 내용의 토론이 이뤄집니다. 이것이 역으로,
젊은 이들에게 진입 장벽으로 느껴져 활발한 세대교체가 지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있습니다. 발제와 토론을 담당하는 전문가들은 굳이 비중을 나눠본다면
15% 정도가 현 행정부 당국자, 그리고 75% 정도가 교수 등 연구자와 비정부기구 인사들, 나머지 10% 정도가 의원입니다.
제가 그간 참석했던 많은 세미나를 통해 느낀 것은 주제 분야에 따라 연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갈린 다는 점입니다. 개발 협력, 민주주의로의 체제 전환,
법치 질서 확보 등의 연구 분야 전문가는 여성이 많은 편입니다. USIP의 경우,
개도국 법치질서 전환 프로젝트가 많은데, 젊은 여성 연구진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국제통상 쪽은 남자가 많고 나이대가 다양한 편입니다. 한편,
아시아 전문가들은 거의 99%가 남자이고, 연령대도 높은 편이라고 보여집니다. (아시아 전문가는 그 pool도 작은 편입니다. 한.중.일 3국을 모두 합쳐도요) 이 중 놀라운 것은,
CSIS 내 국방/안보 분야 프로그램 최고 책임자가 여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특히 국방, 안보의 미래 (Cyber security, super
soldier, new warfare)를 연구하는 고위급 여성 전문가가 많습니다. 제가 얼핏 듣기로는 미 국방부 내 중간급 관리자 중 여성이 20% 정도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CSIS는 미국 행정부, 의회, 기업, 그리고 시민사회 간 broker 역할을 수행하는데
주안점을 둔 기관입니다. 그 역할을 얼마나 더 빨리, 효율적으로 하느냐가
CSIS의 비지니스 모델인 것 같습니다. 제가 워싱턴에 체류한 기간 동안 CSIS에서 가장 자주 다뤄진 주제는 우크라이나 사태, 미국의 에너지 안보, 중동 문제, 그리고 국방개혁입니다. 싱크탱크가
broker 역할을 하는만큼 자체 내 구축한 인적 네트워크에 따라 아젠다 선정, 관련 전문가 초청이 크게 좌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감안해
CSIS내 연구를 진행하신다면 보람된 워싱턴 생활을 하실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