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절정의 피아노 소나타 연주로 열도를 사로잡다

프랑스를 거점으로 활약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일본 공연이 요미우리 신문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공동 주최로 4월 3일과 6일 도쿄 기오이 홀에 이어 8일과 10일에는 오사카 이즈미 홀에서 개최되었다.
이번 일본 공연 일정은 절묘하게도 일본 열도 전체를 스노 핑크 색깔로 m 물들인 벚꽃의 개화 시기와 맞아떨어져 감동과 감흥이 더했다. 3월 말이면 도쿄의 벚꽃이 만개할 거라고 발표했던 일본 기상청 예보가 빗나간 것은 벚꽃 꽃망울이 거장의 피아노 선율을 느긋하게 참고 기다렸기 때문 아닐까.



한국인에게는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잘 알려진 음악가 백건우. 그는 아홉 살 때 첫 독주회를 열었고, 줄리아드 음대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1969년 부조니 콩쿠르에서 우승했으며, 1972년 뉴욕의 앨리스 툴리 홀(Alice Tully Hall)에서 라벨 전곡을 연주해 언론의 극찬을 받으면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이후 베를린 필하모닉에 이어 런던과 파리의 연주에서 유럽인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화려한 경력을 쌓으며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디아파종상 등 프랑스 3대 음반상을 수상했고, 2007년에는 제13회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 피아노부문 심사위원을 맡는 등 국제적 음악 행사에서 최고의 예우를 받고 있다. 영화배우 윤정희 씨와 1974년에 결혼해 34년째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고 있으며, 현재 에메랄드 코스트 음악 축제의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건반 위의 구도자가 펼치는 소나타의 무한 감동
백건우는 자신의 연주 능력과 음악성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했고, 늘 새로운 스테이지를 열어 나갔다.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노의 순례자로 칭송받는 그는 최근 몇 년간 베토벤 연주에 몰두하고 있다. 2005년부터 3년간의 녹음 작업을 거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2곡 전곡을 음반으로 발표했고, 2007년 12월에는 예술의전당에서 7일이라는 단기간에 베토벤 소나타 전곡을 연주하는 경이로운 기록을 달성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악기 중 하나인 피아노가 최초로 제작된 시기가 1709년이라고 하니, 올해는 피아노 탄생 300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일까, 일본 순회공연 레퍼토리로 백건우는 무게감 있는 베토벤 소나타로 관객을 맞이했다. 소나타 32곡의 명작 중 8곡을 선별해 도쿄와 오사카의 첫날 공연에는 30・14・19・23번을, 두 번째 날 공연에선 10・26・8・32번을 연주했다. 베토벤 소나타 30번으로 시작해 잘 알려진 ‘월광’, ‘열정’, ‘비창’, ‘고별’ 등의 명작을 연주한 뒤, 마지막엔 32번 소나타로 끝나는 공연 프로그램 구성은 백건우의 베토벤 해석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4월 3일 금요일, 도쿄의 기오이 홀에서 첫 번째 공연의 막이 올랐다.
2001년에 있었던 도쿄 공연 이후 8년 만에 개최한 그의 리사이틀이다. 그동안 일본에서의 공연이 미약했던 탓인지 일본인에게는 그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은 편이어서 약간의 떨림과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백건우는 역시 우리가 자랑할 만한 피아니스트임을 여실히 입증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은 거장의 원숙미 넘치는 연주와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어 베토벤의 음악 세계에 흠뻑 빠졌고, 소나타의 무한 감동에 심취했다. 공연이 끝나자 관객의 반응은 뜨거웠고 한국 출신의 실력파 피아니스트의 존재를 확인하며 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공연 후 이어진 권철현 주일대사 주최 리셉션에는 일본의 정・관계 인사와 학술・문화・언론계 주요 인사, 재일 한국 기업인 등 100여 명이 참석해 공연이 안겨준 감동을 함께 나누었고 피아니스트 백건우 공연의 성공을 축하했다.
4월 6일 공연은 월요일이라 그런지 관객 수는 다소 감소했지만 ‘비창’ 등명곡이 전하는 피아노 선율의 감동은 더욱 진했다. 도쿄의 마지막 공연이 끝난 뒤 진행된 팬 사인회에서는 공연 중의 근엄함과 다른 연주자의 다정한 인간미를 엿볼 수 있었다.



소나타 대장정의 완결판
오사카 공연은 벚꽃이 한창 어우러진 오사카 성이 내다보이는 이즈미 홀에서 열렸다. 4월 8일의 공연은 일본 공연을 꾸준히 해온 피아니스트 에브게니 키신(Evgeny Kissin)의 오사카 리사이틀과 겹쳐 객석을 채우기에 고전했다. 하지만 벚꽃 꽃잎 사이로 오사카 성 위에 떠오른 둥근 달이 보이는 밤, 베토벤 소나타 14번 월광의 울림은 그야말로 낭만의 절정이었다. 오사카 성을 축조한 일본 전국시대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들었더라면 그의 호전성이 조금은 순화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이 들 정도였다.
오사카 공연의 마지막 날인 4월 10일, 가득 들어찬 관객은 묵직한 피아노의 음색과 이즈미 홀 특유의 아름다운 어쿠스틱 속에서 연주자의 음악에 매료되었다. 장일범 음악평론가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베토벤 연주는 중국을 시작으로 한국을 거치며 화제가 되었던 ‘소나타 대장정’의 완결판이었다고 언급했다. 마지막 공연을 보려고 서울에서 급히 날아온 그였기에 감상평 중에서 일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후기작인 26번 ‘고별’을 쉬지 않고 몰아친 백건우는 이별의 슬픔과 좋았던 시절에 대한 추억 등 변화무쌍한 감정 변화를 천둥같이 파워풀한 음량으로 들려주었다. 소나타 8번 ‘비창’, 베토벤을 눈앞에서 그려내는 듯한 연주를 마친 백건우는 쉼 없이 다음 곡으로 이어가려 했지만 감동한 청중은 뜨거운 박수로 그를 멈추게 했다.”

소나타가 남긴 여운
이번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일본 연주회는 한국인의 음악적 재능과 우수함을 일본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일본에서 한류는 주로 드라마를 비롯한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이어져 왔는데 앞으로는 피아니스트 백건우, 지휘자 정명훈, 성악가 조수미 같은 클래식음악가도 한류를 더욱 활성화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국경을 초월해 감동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예술이 지닌 힘이다. 건반 위의 구도자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일본 공연은 이를 잘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일 관계의 성숙한 발전을 위해 향후 양국 간에 더욱 많은 문화 예술 교류가 이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