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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의 중심에서 ‘문화 외교’를 외치다

2009년 방일 대표단으로 선정된 28명의 한국 대학생들이 지난 9월 14일 일본으로 떠나 한일문화축제한마당에 참가하는 등 성공적인 활동을 펼치고 돌아왔다. 소속도 전공도 성격도 각기 다른 28명의 대학생. 긴 준비와 기다림, 설렘의 시간을 보낸 뒤 일본을 향한 이들에게 이번 방일은 커다란 보람으로 다가왔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새삼 부끄러워지는 영어 면접과 일어 면접을 뚫고 선발되었다고 하여 이들 방일 대표단 28명이 대한민국에서 상위를 차지하는 쟁쟁한 능력자들이냐고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No’다. 방일 대표단으로 선발된 것에 대해 나는 0.001%의 운과 나의 문화 외교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방일 대표단은 자기소개서와 면접의 기술로 선발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들 28명은 일어는 몰라도 적어도 영어 한두 마디는 어설프게 해서라도 방일 대표단의 일원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학생들이다. 우직한 것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게 바로 이들 28명의 방일 대표단이다.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채운 공연 한마당
1971년 8월 제5차 한일 각료회담 합의를 통해 1972년 처음으로 대학생 대표단 20여 명을 상호 초대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이뤄진 한일 대학생 간 상호 교류가 올해로 38회째를 맞이했다. 미래의 주역인 한일 대학생들에게 양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 한일 관계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으며, 1992년부터 외교통상부의 요청으로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전반적인 행사를 주관하고 있다. 한일 월드컵으로 한일 관계에 관심이 더욱 고조되었던 2002년에는 기존 20여 명의 대표단이 연간 30여 명으로 확대되는 등 한일 양국의 문화 교류 사업에서 점차 비중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한일 문화 외교의 깊은 의미를 지닌 한국 대학생 방일 대표단은 그 어떤 해보다도 올해 더욱 주목받았다. 바로 2009년 방일 대표단의 일본 방문 중에 제1회 한일문화축제한마당이 개최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9월 14일부터 16일까지 방일 대표단은 나고야 성 등의 일본 옛 모습을 담은 거리와 세계문화유산인 시라가와고와 고카야마, 일본 3대 정원 중 하나인 겐로쿠엔 등 일본 고유의 문화유산을 방문했다. 그 가운데 일본에서 한국을 알리고자 동분서주하는 대표단들의 모습을 보며 문화 외교의 중요성을 되짚어보기도 했다. 한국 대학생 방일 대표단은 방일 기간 중 가장 중요하고도 가장 의미 있었던 한일문화축제한마당 행사에 참가했다. 9월 19일부터 21일까지 도쿄 롯폰기힐스 아레나 광장에서 열린 ‘한일문화축제한마당 2009 in Tokyo’는 한일 양국 간 문화 교류의 장으로서 큰 의미를 지닌 행사다. 오랜 기간 수많은 한일 기업과 단체가 준비한 행사로 2005년부터 시작해 매년 한국에서만 열렸던 한일문화축제한마당을 이번에는 일본 도쿄에서 처음으로 개최한 것이었다. 그 의미만큼 참가 규모도 컸다. 외교통상부 등 한국 문화 교류의 상징성을 담은 7개 후원 단체를 비롯해 일본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신예 한류 스타, 한국의 인간문화재 등 140여 명의 문화예술 공연단이 참가했다.
이번 행사에서 가장 꽃이 되었던 순서가 바로 우리 방일 대학생들의 공연이라고 많은 칭찬과 격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만 사실 우리의 공연은 중간 중간 실수도 많았고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화려한 기교도 없었다. 마술, 연극, 노래, 춤 등의 팀으로 구성된 우리 방일 대표단 대학생 28명의 ‘어설픈’ 공연이 그 어떤 프로그램보다도 열렬한 지지와 환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공연에 임하는 우리들의 진솔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그들도 보았기 때문이리라. 긴장이 풀려서였을까. 공연 후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리던 댄스 팀의 소녀시대들. 그간 준비해온 그들의 뜨거운 열정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관객들은 큰 박수로 그들을 응원해주었다.
그날 저녁 한국의 인기 걸 그룹 소녀시대의 ‘소원을 말해봐’를 완벽히 재현한 댄스 팀과 <겨울 연가>의 유명 장면을 코믹하게 재구성한 연극 팀은 일본 뉴스에까지 방영되었다. 연극 팀의 공연이 끝나고 일본 아줌마 팬들이 배용준(욘사마)으로 분장한 학생과 기념사진을 같이 찍으려고 줄을 섰던 기억이 떠오른다. 언젠가 연세대 나임윤경 교수의 『여자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읽었던 일본의 아줌마 ‘오바상’들의 저력을 여기서 또 한 번 느꼈다. 일본 언론도 보지못했던 진솔한 한국을 일본 ‘오바상’들은 단점 장점 할 것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일본에 전해주었다. 단순히 잘생긴 한국 배우를 좋아해 주는 수준을 넘어서 전후 한 세기 동안 한일 외교관과 정치가들이 하지 못했던 일들을 ‘오바상’들이 해내고 있었다. 한일 양국의 가교가 되어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뛰어넘는 화합의 가능성을 보여준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축제의 끝은 또 다른 새로운 시작
한일 문화 외교 행사에 2009년 방일 대표단으로서 참여하여 한국의 미래를 일본인들에게 선보인 것은 어찌 보면 내 인생에 길이길이 남을 최고의 행운이 아니었을까 싶다. 공연 준비를 위해 뜨거운 땀을 흘렸던 2009년의 여름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댄스팀 여학생들의 눈화장을 번지게 했던 눈물도 유난히 아름답고 뜨겁게 느껴지는 하루였다. 이번 행사에는 그 밖에도 놀이단, 봉산탈춤, 비보이 공연등 다양하고 이색적인 한국의 공연들이 펼쳐져 볼 것도, 체험할 것도 많았다. 한글 이모티콘으로 만든 배지나 티셔츠 부스에서는 행사가다 끝나기도 전에 준비한 물품이 품절되었으며, 한국의 색을 담은 한지 공예에도 서로 참여하기 위해 줄을 설 정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했던 강강술래. 옆에 손을 잡은 이의 나이나 성별 그리고 국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빙글빙글 돌며 한일 외교의 밝은 미래를 염원했던 신명 나는 축제의 한마당이었다.
강강술래의 의미처럼 서로 어우러지기를 바라는 우리의 염원은 이루어질까? 링컨은 ‘내가 마음먹은 날, 이미 절반은 이루어진 것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제대로 된 교육도 못 받은 농촌출신이 변호사가 되고 미국 대통령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래! 해보자!’라는 결심이 굳건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기회에 우리가 마음 먹어야 할 일이 생겼다. ‘서로 이해하는 마음’이다. 서로를 이해하고자 마음먹은 순간, 한일 양국의 밝은 미래의 절반은 이루어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마음먹고, 우리가 마음먹은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이미 절반을 이룬 것이다. 우리의 축제는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부터다. 내 가슴속의 설렘도, 벅찬 감정도 카니발의 들뜬 분위기에만 휩쓸려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별하기 전에 받은 수많은 일본 친구들의 편지와 연락처를 보며 한국에 돌아가서 내가 할 일은 축제를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으로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