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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와 박수근

해외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학자들은 한국 문화의 특성과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을 위해 한국과 한국 문화의 정수를 객관적·학술적으로 정의해 주고 또한 이웃 일본이나 중국과는 어떻게 다른지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학자 개인의 경험이나 가치관에 의거해서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해 가장 좋아하는 것,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전달하는 것도 그 한 가지 방법일 것이다


추석 하루 전날 호암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박수근(1914-65) 회고전’을 다녀왔다.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것은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그 당시 보았던 그림들은 산업화와 도시화 이전 한국의 농촌 풍경을 그린 작품들이었고 대부분 회색과 갈색조로 색깔들의 구분이 모호해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인지 별다른 감동을 받지는 못했었다.

그러다, 단순하면서도 확실하고 강한 선으로 여자와 아이들을 스케치한 드로잉 작품들을 우연히 대하게 되었는데, 평온하기 그지없는 가운데서도 표현력이 넘쳐흘러서 보는 순간, 절로 깊이 매료되어 버렸다. 그의 드로잉을 통해, 화강암 같은 표면과 흐린 색감에도 불구하고 선이 확실하고 강한 선이 주는 감성적인 힘과 ‘봄날’의 경우에서처럼 어딘가 빛을 내뿜는 듯한 마띠에르 작품의 맛을 알게 되었다.

이렇듯, 내가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작품들과 더불어 많은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대단한 기쁨이었다. 동시에 외국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학자로서 중요한 몇 가지 물음들에 대해서 되새겨 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그 전시회는‘우리들의 화가: 박수근’이라고 이름지어졌고, 소개책자에는 그의 작품의 본질적 요소를‘한국적인 것’이라고 특히 강조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흔히들‘가장 한국적인 미학’을 표현해내는 지극히 한국적’이며, ‘한국 정체성의 본질’에 대한 인식을 가능케 하는 매개(媒介)라고들 이야기한다. 그의 그림을 관람자들에게 설명해 주던 전시관계자도 말끝마다.한국적’이라는 어휘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흔히들 변하지 않는‘한국적인 특징’의 정수라고 일컬어지는 그의 작품 주제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대상물(시냇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또는 그와 유사한 시골풍경)로 표현되고 있다는 점이 역설적으로 보였다. 박수근이 표현했던 것은 현대화와 도시화로 사라져버린 지 오래 된 한국이었기 때문이다.

이‘한국적’이라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흔히 한국적인 것이라고 간주되는 것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적 정체성과의 연관성이라는 것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만큼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경험한다. 역사적인 변화에 의해 속성 자체가 변형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치를 예로 들어보자, 이것은 너무나도 한국적인 것으로 인식돼 있어, 미국에서 한인들이 운영하는 인터넷 네트워크가 ‘Kimch’i-net’로 명명됐을 정도이다. 그러나, 김치를 다른 문화권의 절인 배추와 차별 짓는 고추는 상대적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남미에서 한국으로 도입되었다. 김치에 있어 가장 한국적인 것, 즉 빨간 색깔과 매운 맛이 실제로 얼마 오래 되지 않은 것들이라는 점이다. 보다 객관적으로 한국적인 정체성을 정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에 대한 것과 더불어, 무엇이, 왜 그리고 어떠한 과정을 통해 한국적인 정체성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로 인식되어지게 되는가 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해외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학자들은 한국문화의 특징과 정체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학생들과 일반대중은 누군가 한국과 한국의 문화에 대해 권위 있는 정의를 내려주기를 바란다. 현대의 서로 다른 문화 간의 활발한 의사소통 덕분으로 한국인들 또한 우리가 정확하게 그들의 문화를 대변하고 있는지 지켜보고 있다. 어찌 보면, 19세기 최초로 한국에 대한 논문을 쓴 서구인 중의 한사람인 네덜란드인 J. J. Hoffmann 교수에게는 지금보다 일이 훨씬 수월하였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늘날의 동료 한국학자들로부터의 적극적 피드백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들은 ‘한국은 무엇인가’에 대한 설명과 이웃 일본, 중국과 어떻게 다른지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대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일관성 있는 패턴을 추출해내야만 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주위에 널려 있는 ‘동양적인 것’에 대한 진부한 스테레오 타입을 만들어 내고, 확대 재생산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 같은 해외 한국학자가 처해있는 딜레마이다. 그러나, 서구인들만이 전적으로 이 같은 오류에 책임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적지 않은 경우, 동아시아인들 스스로가 목전의 이익에 부합되면 이 같은 스테레오 타입 창출에 기꺼이 동참하는 것을 본다. 당장은 편리하고 유용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결정적인 순간에 화가 된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내 자신도 연구한 바 있는, 개고기의 식용과 관련한 인터넷상의 논쟁에서, 서구 반대론자들은 처음에는‘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를 위해 점잖고 인간적으로 호소하는 듯 하더니 어느 순간 아시아인을 미개하고, 잔인한 호색한쯤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서양인들의 의식 저변에 동양인들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한국사회 내에서도 이를 반대하는 의견이 있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모든 한국인들을 한 덩어리로 비난하고 있다는 것도 문제이다. 따라서, 문화적 인종적 편견이 없이 서로 다른 문화간에 논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한국 연구 학자들이 해나가야할 임무 중에 하나라고 본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한국문화의 이해를 위해 가장 유용해 보이는 측면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해석에 본질적으로 내재한 편파성과 부분성을 항상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로 한국 문화와 사회의 모든 부분을 표현하기란 불가능한 것이고, 우리가 선택한 것들조차도 어느 정도는 자의적이며, 우리 자신의 관점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 때문일 것이다. 둘째로,현실적인 상황은 항상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상식적으로 과거에 발생한 일은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즉, 적어도 과거는 불변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과거에 대한 언급과 평가, 역사에 있어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한 견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따라서, 단 하나의 견해가 전체를 대변할 수 없다는 사실이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대부분의 서방 사회보다도 역사를 중요시하는 한국에서는 가계, 지연, 종교로 연결된 집단들이 열정적으로 역사 속에서의 공을 다툰다.

일례로, 소위 신흥종교로 불리는 증산도는 국가적 역사라는 큰 범주의 틀 안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어떤 의미로는 주류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견해들을 제시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많은 한국 기독교인들이 구약시대에 감내해야 했던 유대인들의 운명을 현세기에 그들이 겪은 고난과 비유하고 있다. 우연하게도 이는 특히 네덜란드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했던 17세기에 네덜란드인들도 조선인들이 그랬듯이 고난의 상황을 유대인 역사의 구체적인 일화와 연계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편파적인 역사 인식을 만들어 낸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인식과 견해가 역사를 의미심장하게 만든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인식이나 해석이 보편적일 수는 없다. 역사의 모든 해석 중에서 어떤 것들은 자료를 분석하는 수단과 방법의 객관성과 과학성에 비례하여 다른 것들보다 보다 더 정확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떠한 해석이나 표현도 완전무결한 정확성을 제공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이와 유사하게, 현대에 대한 다양한 해석 중에서도 어떤 것이 다른 것들에 비해 선호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한국적’이라는 것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은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점들을 고려할 때, 과연 학생들을 가르치고, 일반 대중을 위해 글을 쓸 때, 한국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는 진실로‘한국적인 것’에 대한 비법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한’ 조금,‘멋’약간, 여기에‘김치’를 넣고 5천년 역사의 간장을 첨가하여 잘 섞어 보라?) 하지만, 우리는 우선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이면서, 첫번째 과업과 밀접하게 연관지어져 있는 한국 문화의 문화문법을 능력껏 가르칠 수 있다. 학생들이 한국 사회에 대해 논의할 때 고정관념이나 편견에 기대지 않기를 바라면서.

예를 들어 우리는 한국인들 자신들이 한국적인 것들에 대한 논의하고 있는 내용과 그 방식을 소개해야 할 것이다. 쉽게 써먹을 수 있는 공식을 알려주거나,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한 한국인의 개념을 비역사적이고, 학술적으로 비논리적인 것으로 치부해버려서는 안 된다. 일반 대중을 위해서도 치명적인 스테레오타입을 배제시켜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가치관에 기초하여 한국과 한국 문화에 대해 개인적으로 정말로 좋아하는 것,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한국의 문화가 동양박물관의 하나의 전시 대상물이기 보다는 살아 움직이는 실체라는 느낌을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나에게 한국 문화 중 가장 좋아하는 것을 묻는다면 판소리와 박수근을 꼽고 싶다. 내 직관 으로는 판소리가 아주 한국적이라고 느낀다. 비록, 항상 또는 오랜 시간 동안 한국 문화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만이 한국 문화를 대표할 수 있다고 한다면 내 주장은 모호한 것 이거나, 비논리적인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판소리가 현재와 같은 1인극의 형태로 완성된 것은 19세기에 이르러서야 가능했고, 20세기에는 성쇠를 거듭하였는데, 때때로 사라져 가는 위험에 처한 것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음악으로서의 판소리는 그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성악적 테크닉으로, 문학으로서의 판소리는 고상함과 비속함을 절묘하게 혼합한 매력적인 가사로 말미암아, 정말로 이웃 국가들과 뚜렷이 구별되는 한국의 특징적인
정체성을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박수근 또한 비슷한 이유로 그러한 대표성을 갖는다고 본다. 그의 작품이 ‘한국적’이건 아니건 간에, 그는 서양의 Giorgio Morandi나, Pet Mondriaan과 같은 대가들처럼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예술 형식을 고수했고, 개성이 넘치는 새로운 예술 형태를 한국 역사의 한 시대에 제시한 위대한 예술가이다. 다시 말해, 그는 그가 살았던 시대를 우리가 회고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는 작품을 창작했던 것이다. 나는 단순히 그가‘한국적인 것’을 표현했다기보다, 한국 문화에 무언가를 더 했다고 생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