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인으로 캠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 전공자인 필자는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지원을 받아 체한 펠로로서 지난 8개월간 한국에 머물면서 그동안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한국에 대해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되었다. 한국의 현실과 앞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 및 과제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들어본다.
실현되지 않은 잠재력을 안고 있는 나라, 한국
지난 수십 년간 이룩한 발전을 바탕으로 한국은 여러 측면에서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런던이나 파리, 뉴욕에서 지하철을 타본 경험이 있다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한국의 교통 체계가 지상이든 지하든 깨끗하고 친절하며 저렴하고 안전할 뿐만 아니라 보다 효율적이라는 데 동의할 것이다. 이는 인프라 측면에서의 한 가지 예에 불과하며 이외에도 기술, 의료 서비스, 건설 및 교육 등 다른 많은 분야의 발전 또한 놀랄 만하다. 더욱이 유럽 및 미국의 거대 도시와는 달리 한국의 대도시에서는 개인의 안전에 대해 그리 우려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치안 상태가 좋다. 그 결과 한국은 외국인 투자자와 기업가는 물론 학자 및 과학자들에게도 매력적인 나라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이 동아시아의 금융 및 기술 허브로서의 잠재력을 실현시킬 수 있을지 여부는 아직 불명확하다.
한국이 선진국 진입이라는 야심 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직도 최소한 두 가지 정도의 요건은 충족시켜야 할 것 같다. 첫째, 한반도 긴장 완화를 통해 안정적인 외국인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는 우호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둘째, 바이오 기술,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분야에서 한국 기업과 혁신적 외국 기업 및 사업가 간의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소프트 파워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 이 두 가지 측면과 관련해서는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는 듯하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한반도 평화 정착 및 안정
북한 비핵화를 위한 1994년 제네바합의 및 2007년 2.13합의 이행 실패로 한반도 평화 정착 및 안정이라는 꿈이 요원해졌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실제로 북한의 핵실험 및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도발은 한반도 상황이 풍전등화와 같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한반도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는 현 상황이 단순히 북한의 호전성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이 북한의 체제 전복을 기다리며 1994년 및 2007년 북한과 합의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자 이에 북한이 약속을 어기고 동북아에 긴장 상황을 몰고 오고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합의 사항의 이행이 다시 이루어지고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과 북한 그리고 남북한 간 신뢰 재구축이라는 장기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달리 말해 동북아 지역의 안정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대화의 틀로 끌어들이기 위한 새로운 로드맵이 필요하며, 이는 한미 양국이 북한에 선제 조건을 제시하기보다는 먼저 당근과 회유책으로 북한을 설득해 양보하도록 하는 접근 방식을 취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미 1993년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lucci) 전 미 국무부 차관보를 비롯한 클린턴 행정부의 실용주의자들은 미국이 뒷짐을 진 채 북한에게 모든 것을 먼저 하라고 요구하는 접근 방식은 성공할 수 없음을 간파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후 부시 및 오바마 행정부가 이런 일반적 통념을 거스르는 정책 기조를 선택하며 현재와 같은 외교적 교착 상태에 이르게 되었고 동북아 지역의 긴장 상황도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북한의 입장에서 볼 때 그동안의 강경기조에서 벗어나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관계를 정상화하는 것과, 서구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각종 사상 및 가치와 제도를 수용하는 일이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한미 양국은 이해해야 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이는 단순히 국제사회의 동등한 일원으로 인정받고 현재의 외교 및 경제적 제재 조치에서 벗어나는 일련의 과정을 의미할 뿐이다. 한국과 미국이 북한에 충분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권 상황 개선 및 언론의 자유 보장 등 민주주의로의 전환에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을 충족해야 대화에 임할 수 있다고 고집하는 것은 신뢰 구축에 장애물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장기적 노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
소프트 파워에 대한 제고
한국의 경제 및 과학기술 분야의 잠재력을 최대한 이용해야 한다는 두 번째 요건은 충족시키기가 좀 더 용이해 보인다. 소프트 파워는 다른 나라의 선의나 협력이 없더라도 독자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속성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표 집단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소프트 파워의 본질을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2010년 12월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제주평화연구원에서 개최한 ‘한미 관계에서의 공공외교 심포지엄’은 바로 이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공공외교 분야에서 한국이 지닌 최고의 소프트 파워 자산은 무엇일까? 심포지엄에서는 한류, 그리고 이미 많은 발전을 이룬 각 산업 및 인프라 그리고 민주주의 사회라는 세 가지를 주요 자산으로 언급했다.
필자는 여기서 한류와 민주주의 간의 차이점에 대해 언급하고자 한다. 먼저 한류는 한국 정부가 더욱 장려하고 지원해야 할 매우 긍정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사실 한 가지는 한류의 대상 그리고 그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점이다. 매년 한국 영화 및 드라마와 음악 상품의 수출을 통해 수억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창출하고 한국 음식과 역사 및 언어에 대한 관심도 점차 확산, 증가하고 있기는 하지만 현재의 한류는 일반적으로 소프트 파워의 핵심으로 여겨지는 것의 겉포장, 즉 표면에 한정되어 있다.
소프트 파워의 핵심은 다양한 정부, 공공 혹은 민간 제도에 반영된 한 국가의 문화, 정책 개념, 유산 및 가치다. 이 점에 있어 한국은 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이미지 제고를 위해 개선해야 할 점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며, 이들 과제를 해결할 경우 과학 혹은 기술 측면에서 한국과의 비전 공유를 주저하고 있는 혁신적 외국 기업인들을 보다 잘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상기 전술한 바가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외국 기업이나 사업가가 한국에 대한 투자를 고려할 때 이들에게 원더걸스가 미국 내 음반 판매 순위 10위 안에 진입했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이들이 고려하는 점은 예를 들어 공정한 사법 체계가 존재하는가, 지적재산권을 침해당하거나 기타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한국의 재벌 내지 기타 토종 업체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승소할 가능성이 있는가 하는 점이다. 투자 대상국에서 공정한 대우를 받을 것이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외국 투자자는 언뜻 보기에는 많은 수익을 낼 것으로 보이는 투자 기회라 할지라도 이를 잡지 않고 흘려 보낼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의 현 행정부가 정부 및 공공기관에서 공정 사회로 가기 위한 정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면 이들 기관에 대한 외국 투자자 및 기업의 신뢰가 높아지며 한국은 앞으로 도래할 수십 년간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그간 이룩한 기적과도 같은 발전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의 발전을 말이다.
니브 파라고(Niv Farago)
캠브리지대학교 국제정치학 박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