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한국문화를 먼저 배운다

직접 한국에 와서 한국에 대한 연구를 하게 돼서 좋은 점은 성공적인 연구를 위해서 가장기초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식으로 먹고 마시고 말하는 것부터 음악 이론과 실습에 관한 가장 기초 개념을 재학습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기초적인 것부터 새로이 배워야 하는 한국 생활은 나를 매우 겸손하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나는 한국에서 현대화, 도시화된 한국사회에서의 전통음악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내가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분야는 한국 전통음악이 과거로부터 어떻게 발전되어 왔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되어 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 그리고 전통음악의 교육과 공연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증대시키기 위해 관련 인사들이 저마다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들이다. 나에게 이 분야의 연구는 비단 박사학위를 위한 것뿐만 아니라 세계 속에서 한국문화에 대한 이해를 돕는 문제이기 때문에 매일 그 중요성으로 인한 부담감을 느끼고 있다.

그러나 직접 한국에 와서 한국에 대한 연구를 하게 돼서 좋은 점은 성공적인 연구를 위해서 가장 기초적인 것들을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식으로 먹고 마시고 말하는 것부터 음악 이론과 실습에 관한 가장 기초 개념을 재학습하는 것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렇듯 기초적인 것부터 새로이 배워야 하는 한국 생활은 나를 매우 겸손하게 만드는 경험이었다.

미국에서는 내가 다니는 대학교에 한국의 전통음악 과목이 개설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한국의 음악과 사회를 배우기 위해서는 오로지 책자에 의존해야만 했다. 그래서 작년 한국에 처음 왔을 때, 한국에 있을 동안에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도움을 받아 현대백화점에서 운영하는 문화센터에 등록하게 되었다. 친구와 나는 처음 배우기에 가장 쉬운 악기가 ‘단소’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화점에서 조그만 벨벳 케이스에 들어 있는 단소를 구입하였다. 그리고 주부들과 내 또래의 학생들과 어울려 여러 멜로디와 민요들을 빠르게 터득하고 수주일 만에 고급반으로 올라가는 내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첫 수업이 있던 일요일, 교실에 들어선 나는 수업에 대한 나의 상상이 전혀 엉뚱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의실에는 한 무리의 꼬마 아이들이 모여 있다가 키가 크고 누가 보기에도 유일한 외국인인 내가 들어서자마자 모두 뒤돌아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자리를 찾아 앉아서 내 또래 사람들이 오겠지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강사가 들어오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우리는 단소를 불기 위해 손가락을 어디다 둘 것인가부터, 소리는 어떻게 내는지를 배웠다. 그러나 그때부터 나의 시련은 시작되었다. 도무지 제대로 된 소리를 못 내는 것이었다. 일요일마다 이번엔 좀 나아지겠지 하면서 수업에 참여하곤 하였다. 내가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인 줄 알고 자녀의 실력이 많이 나아졌는지 알고 싶어하는 학부모들을 피해서 강사가 오기 전에 미리 강의실에 도착하여 혼자서 먼저 연습을 하곤 했다. 다른 아이들은 쉽게 멜로디를 익혀 가고 있는 반면에 나는 소리도 제대로 못 내고 여전히 끙끙대고 있었다. 이러는 나에게 강사는 그저 미소를 지으면서 “계속 노력하라”고만 하는 것이었다. 결국 수주일 후에 단소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단념하고 그만두었다. 이것이 내가 한국 악기를 배우기 위한 최초의 시도였으나 결과는 매우 실망스런 것이었다.

국립국악원에서는 한국 전통음악을 배우고자 하는 외국인들을 위해 무료 강좌를 열고 있다. 나는 ‘장구’를 택했고 벌써 1년째 배우고 있다. 또한 친구한테서 배우기 시작한 해금도 지금은 국립국악원에 등록하여 배우고 있다. 이처럼 음악 강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었고 한국에서의 연구를 수월하게 해주는 요소가 되었다.

나는 붉은색이 도는 금발머리에 키가 큰 편이고 파란 눈을 가졌으며 실제 나이(미국 나이로 29세)보다 어려 보인다. 단지 이런 외모 때문에 지하철이나 상점, 거리, 아니 일단 집밖을 나가기만 하면 나는 사람들의 주목거리가 되고 만다. 서울 거리를 걷다 보면 아이들이 나를 보고 “헬로우?”라든가, “외국인이다!”라고 소리치는 것을 듣곤 한다. 한국에서 살면서 이런 것에 이미 익숙해 있지만 외국인이라는 점이 내 연구 활동에 때때로 장애가 될 때가 있다. 사람들은 내가 한국말을 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기 때문에 나와 얘기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곤 한다. 내가 어려 보이는 것 때문에 나를 가볍게 대할 때도 있고, 종종 내가 한국에 영어를 가르치러 온 사람으로 지레 짐작하기도 하는데, 영어 선생이 아니라고 해명을 해야 하는 난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 모든 상황에 나름대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이곳 한국에서의 삶의 일부이며 나를 강하게 만들었다. 내 한국어 실력이 어린애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때때로 그 수준에 맞춰 나를 대한다. 나에게 나무 이름, 음식 이름, 동물 이름 등을 한국어로 무어라고 하는지 곧잘 묻곤 하는데 한두 개를 몰라서 대답하지 못할 때(‘영어로는 아는데….’라고 항상 혼자 생각하지만) 당황한다. 한국에서 음악을 배우면서 경험한 것처럼 나는 자존심을 누르고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처음부터 다시 열심히 배우게 되었다. 그 결과 나는 한국의 가족구조, 사회계층, 예의범절, 식사습관, 음주습관 등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것들이 내 연구활동에 소용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한국문화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 훨씬 더 나은 자질을 갖춘 연구자가 될 수 있었다.

한국에서의 본격적인 연구는 금년 초 시작되었다. 그러나 한국 생활을 경험하게 된 것은 한국어 실력을 높이고 음악 교습을 받기 위해 작년에 한국에 왔을 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나는 여기서 그저 한국어나 음악을 배우고 있는 게 아니라, 연구를 하면서 수집한 자료를 충분히 숙지하기 위해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한국의 생활방식에 대해 새롭게 배워 나가고 있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지난 한 해 동안 나는 여러 성숙의 단계를 거친 것 같은 느낌을 가진다. 유년기, 청소년기를 거쳐 지금은 10대와 성년기 사이 어딘가에 와 있다.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내 연구에 도움이 된, 내 삶을 풍요롭게 해준 그간의 경험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