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팔로대학의 무용과에서 학생들을 위해 실시하는 국제교류 프로그램 및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한 한국 무용가의 학교 방문(School Visit) 프로젝트를 참관하기 위해서 필자는 2002년 11월 한달 내내 버팔로 시티와 뉴욕에 체류했다.
버팔로대학은 상주 예술가 초청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한국의 안무가 손인영 씨를 초청했고, 이 같은 사실을 확인한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코리아 소사이어티(회장: 도날드 P. 그레그)와 연계하여 이 기간 동안 뉴욕을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의 학교 방문을 통한 한국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실시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안무가를 초청한 버팔로대학의 국제교류 행사는 모든 면에서 치밀하게 준비되었고, 그 만큼 성과도 컸다. 초청된 안무가의 일정은 하루하루 빡빡하게 짜여져 있었으며, 이 대학 무용과 학생들을 위한 수업 내용도 실기 클래스·즉흥·엑팅 등으로 세분화해서 진행하도록 했다. ‘Asia at Noon’이란 테마로 진행된 학교 교수들과 행정가들을 대상으로 한 강좌, 음악·연극·무용·미술 등 예술 관련학과 교양수업에서의 ‘한국의 전통문화와 춤의 이해’` 강의, 그리고 버팔로 지역 내 공연예술 전공 고등학교 학생들을 위한 ‘한국무용 워크숍 ’ 클래스 등이 실시된 것이다. 또한 한국 안무가의 초청 기한이 끝나기 전날에는 극장에서 초청 안무가의 작품을 공식적으로 공연토록 했는데, 여기에서는 선발된 학교 무용수들이 그 동안 연습한 초청 안무가의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특히 이 대학 무용전공 학생들은 한국 안무가의 클래스에 골고루 참가했고, 이들 중 앞으로 무용을 계속할 학생들은 레퍼토리 작업을 통해 더욱 심도 있는 훈련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뜻깊은 일이었다.
11월 13일 밤 카사린느 코넬(Katharine Cornell)극장에서 있었던 손인영 씨의 공연에는 손인영 씨의 솔로 춤과 9명의 이 대학 무용수들이 출연한 ‘Life is...’ 등 한국의 전통 춤과 컨템포러리 댄스 등이 골고루 선보였다.
대학과 지역사회와의 협력 돋보여그렇다면 이번 프로그램에서 주목된 점은 무엇인가? 우선 외국 무용가를 초청해 그 나라의 문화예술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단지 무용전공만이 아닌, 예술관련 학과의 학생들에까지도 문호를 개방하는가 하면 교수와 행정가들을 위해 세심한 배려를 다하는 데에 특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울러 지역 내 고등학교와의 교류, 공연 후 초청 무용가와의 대화시간을 통해 일반 관객들이 한국의 춤에 대해 이해를 도모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한 것, 공연 후 지역 내 한인들이 작은 리셉션을 마련하도록 한 것 등은 대학이 지역사회와 어떻게 교류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현장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이 대학 학생들이 출연한 한국 안무가의 작품은 연말에 펼쳐지는 무용과 정기발표회 때 다시 공연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국 안무가의 체류 기간은 불과 열흘이었지만, 결국 그들은 한 명의 외국 초청 안무가를 통해 참으로 많은 것들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프로젝트가 성사되기까지에는 2년 동안의 준비 기간이 있었다. 아시아 관련 학과를 연구하는 이 대학의 한 교수에 의해 기획되었고, 초청 안무가가 도착한 후 모든 프로그램의 진행은 이 대학 무용과 교수가 그 실무를 맡았다.
예술교육 현장에서의 국제교류의 중요성은 버팔로에서 뉴욕으로 이동한 후 더욱 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학교 방문 프로그램을 통한 미국 초ㆍ중ㆍ고등학교와의 국제교류는 그 가치와 파급효과 면에서 버팔로대학 무용과에서 실시하는 국제교류 프로그램 못지 않게 대단했다.
이 프로그램은 7일 동안에 걸쳐 모두 13개 학교에서 한국 춤 클래스를 실시하는 것이었는데, 대상 학교 선정은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맡았다. 여기서 무용가 손인영 씨는 한국문화와 한국 춤에 관한 강의를 하는 한편 3개의 각기 다른 한국의 전통춤 실연해 보였다. 또한 비디오를 통한 한국의 전통예술 이해, 학생들이 직접 한국무용의 동작을 체험해 보는 순서, 그리고 질의 응답 등의 프로그램이 이어졌는데, 모든 프로그램은 학교 상황과 클래스 배당 시간 등을 고려해 탄력적으로 운영했다.
특히 학생들은 봉산탈춤과 강강술래를 따라하 는 것을 무척 재미있어 했다. ‘얼쑤’하는 추임새를 통해 연희자와 관객이 하나됨 체험했고, ‘강강술래’라는 후렴을 따라 하며 한국음악의 독특한 리듬과 공동체 춤의 정신을 이해했다.
교육 현장에서의 국제교류 중요성 실감사실 학생들의 대부분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조차도 몰랐다. 그러나 이러한 국제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은 어릴 때부터 다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의 체험은 그만큼 뇌리에 오래 남는 것이므로 이번 한국무용워크숍과 같은 교류 프로그램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알릴 수 있는 효율적인 채널이 될 수 있다. 실제로 워크숍이 끝난 한국인 학생들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기뻐했으며, 외국인 학생들은 “감사합니다”, “탈춤”,“강강술래”,“얼쑤” 등등 금방 배운 한국말과 큰절로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미국 대부분의 초ㆍ중ㆍ고등학교에서는 이 같은 국제 교류 프로그램이 실시되고 있으며, 이를 다른 나라의 문화와 예술을 이해하는 창구로 활용하고 있다. 책자를 통한 교육이 아닌, 직접 참여하는 생생한 체험을 통해 교육적 효과를 배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미국의 각 초ㆍ중ㆍ고등학교에서 실시하는 이 같은 국제 이해 프로그램을 활용, 한국의 문화와 예술을 전하는 데 대단히 소극적인데, 실무자들은 “그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예산부족이 가장 큰 문제” 라고 말하곤 한다.
그런데 이 같은 학교 방문 프로그램의 중요성과 그 교육적 효과를 이미 알고 있는 코리아 소사이어티 역시 예산부족으로 지속적으로 실시하지 못하다가 이번 한국국제교류재단과의 파트너십으로 짧은 기간 안에 13개 학교에서 워크숍을 실시하는 성과를 거둔 것이다.
문화교류 통한 국가이미지 강화해야우리나라에서 초ㆍ중ㆍ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에서 다른 나라의 문화예술을 이해하기 위한 국제교류 프로그램이 얼마나 되는가를 생각하면 어두운 그림자가 물밀듯 밀려온다.
장기적인 면에서 보면 국제무대에서 한국 예술계의 경쟁력은 예술사회 전반에 걸쳐 정책의 틀을 어떻게 짜 나가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국제교류를 담당한 실무자들의 안목과 실천 의지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20여일 남짓 동안의 체류기간이었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한국국제교류재단의 문화교류 업무를 담당하는 윤금진 팀장과 유승은 씨의 추진력, 코리아 소사이어티 교육담당자 최영진 씨의 인맥과 전문성 등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또한 이번 두 개의 프로젝트를 시행하는 데 있어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코리아 소사이어티가 실시하고 있는 한국 관련 전문가의 한국 방문 프로그램이 그 기반이 되었던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버팔로대학의 이번 프로젝트 기획자는 물론이고 학교 방문 프로그램 대상 학교의 실무 교사 중에서도 이 프로그램을 이용해 한국을 다녀갔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문화예술을 통한 국가 이미지 고양과 국가 경쟁력 강화 정책은 이미 선진 여러 나라의 21세기 주요 정책 중 하나이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실무자들의 전문성을 활용한 부가가치 높은 국제 교류 프로젝트에 대한 정부의 효율적인 지원 정책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라 하겠다. 새로 들어서는 정부는 과시형의 요란한 문화정책보다 이 같은 고부가가치의 문화예술 국제교류 정책에도 눈을 돌려주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