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공간의 절묘한 조화가 돋보여
구겐하임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알렉산드라 먼로는 "런던의 테이트, 뉴욕의 구겐하임·모마(MoMA) 등 주요 현대미술관들이 미국·유럽 중심에서 벗어나 아시아·중동까지 시야를 넓히고 있다"며 “이우환은 세계 미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미국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이우환을 세계적 인물이자 현대의 거장으로서 조명했다"고 설명했다.
나선형 전시 공간을 따라 이우환 예술의 역사가 휘돌아갔다. 비탈진 복도에 돌과 쇠 등을 주요 재료로 한 조각과 설치작품이 놓였고, 곡면의 벽에는 선, 또는 점으로 표현한 회화와 드로잉이 걸렸다. 일정한 기법으로 점을 반복해 찍거나 한번에 획을 내려 그은 작품부터 점 하나로만 표현하는 최근 작업까지, 동선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미술관 건물의 한없이 올라가는 무한의 선과, 선과 점이 캔버스 밖으로 연결되는 듯한 작품이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작가의 40년 역사가 스며든 전시
작가는 "화이트 큐브(흰 사각 방)가 아닌, 길은 비스듬하고 벽도 평탄치 않은 공간 앞에서 처음엔 혼란스러웠다. 결과적으로 내 작품을 더 생동감 있게 보여주고 몸으로 느끼면서 생각하게 만드는, 내가 가장 바라던 장소가 됐다"고 말했다. 복도 난간 일부에는 반투명 막을 쳤다. 반대편에서 바라볼 때 작품이 보일 듯 말 듯 아련해진다. '그린 것과 그리지 않은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안과 밖을 연결하는 것' 등으로 요약되는 이우환의 예술세계와 맥이 통하는 전시 디자인이다.
4층 부속 전시실엔 '모노하(物派, 서구 모더니즘에 반해 일어난 1960년대 후반 일본의 예술운동)' 시기의 작품 14점이 전시됐다. 가령 돌을 방석 따위에 올려 마치 애초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 여기저기 놓아둔 것은 자연(돌)과 인공(방석)의 조우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전시는 최근작을 모아놓은 6층 부속 전시실에서 끝난다. 깨끗한 캔버스에 커다란 붓으로 회색톤의 커다란 사각 점을 그려놓은 '다이얼로그-스페이스' 시리즈다. 조각가이자 화가, 저술가이자 철학자로 활동한 이우환 40년의 역사를 온전히 보여주는 자리였다.
재단 창립 20돌 ‘KF DAY’ 성황
개막식에서는 특별한 행사도 마련됐다. '이우환-무한의 제시' 특별전을 후원한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아 제1회 'KF Day(Korean Foundation Day)'를 연 것이다. 행사에는 김영목 뉴욕총영사, 티모시 럽 필라델피아 미술관장, 빅터 차 CSIS 한국실장 등 재단과 인연이 있는 미국인, 재미 한국계 유력 인사 등 250여 명이 참석했다.
미술관 지하 1층 피터스비루이스 극장에서 열린 공식 행사에선 리처드 암스트롱 구겐하임 관장의 환영사와 마크 민튼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회장의 축사에 이어, 김병국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의 강연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1시간 가량 구겐하임미술관 큐레이터들의 설명을 들으며 이우환 특별전을 관람했다.
『엄마를 부탁해』를 현지 발간한 소설가 신경숙씨는 "구겐하임의 행사에 초청돼 이런 전시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며 소회를 나타냈다. 세계 각지의 언론과 음악평론가들로부터 최고의 앙상블이라는 호평을 받고 있는 현악 오케스트라 세종솔로이스츠(예술감독 강효)의 무대도 펼쳐졌다. 세계적 작곡가 진은숙의 '알레그로 마 논 트로포' 등을 연주했다. 공연 뒤에는 리셉션이 열렸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20년간 재단을 통해 교류한 현지 주요 인사들이 한국을 더 잘 이해하고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전시와 연계해 만남의 장을 만들었다. 올 가을에는 샌프란시스코 동양미술관에서 리움미술관 소장 분청사기 특별전과 함께 제2회 KF데이를 개최할 계획이다.
이경희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