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대학교 이용 교수 인터뷰
세계 곳곳에서 한류 붐이 일고 있다. 최근엔 K-pop을 중심으로 대중가요와 드라마 등이 한류 붐의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그 이전부터, 지금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국과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힘써온 이들이 있다. 동유럽의 슬로베니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용(45) 교수도 그런 숨은 ‘한국 알리미’ 중 한 명이다. 그는 서울시립대에서 국문학 박사를 받은 뒤 서울시립대, 성신여대 등에서 강의하다 한국국제교류재단(Korea Foundation, KF)의 지원을 받아 2008년 10월부터 류블랴나대학에서 일주일에 세 강좌, 80여 명의 대학생에게 한국어를 강의하고 있는 그를 만나 보았다.
어떻게 해서 슬로베니아에서 강단에 서게 되셨습니까?
“2006년에 부다페스트에서 논문 발표를 했는데 같이 갔던 교수들과 주변 나라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때 헝가리-슬로베니아 국경을 지나자 그림 같은 집들이 쭉 늘어서 있는 것이 아름답고 깨끗한 나라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같이 갔던 교수들에게 이런 나라에서 한국학을 할 사람을 모집한다면 지원할 거라고 농담 비슷하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2년 후에 거짓말처럼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류블랴나대학교의 한국학 객원교수를 모집하는 공고를 보게 되었고 약속된 것처럼 지원하였습니다.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대학교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구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독립한 슬로베니아는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헝가리, 크로아티아와 경계를 접하고 있는 작은 나라입니다. 인구는 200만 정도이고 면적은 전라남북도를 합쳐 놓은 것 만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은 3만 달러 정도입니다. 수도는 류블랴나인데 약 27만 명이 살고 있고, 종합대학은 류블랴나와, 제 2도시 마리보르 두 군데에 있습니다.
류블랴나 대학은 1919년에 개교를 했는데 현재 학생은 63,000명이고 교직원은 4,000명, 단과대는 실질적으로 26개에 이릅니다. 그러니 류블랴나는 교육의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도 잘 알려진 『신화, 광기 그리고 웃음』, 『전쟁은 없다』의 저자인 심리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이 여기 인문대학 출신입니다. 한국학 강의는 류블랴나대학의 아시아아프리카학부의 일본학과에 설치되어 있습니다. 아직 한국학과가 설치되어 있지 않지만 2013년 설치를 예정으로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주로 어떤 학생들이 한국학 강의 수강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한국학 강의는 현재 단계별로 1, 2, 3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각각 4시간씩입니다. 대체로 일본학 전공 학생들이 많이 듣는데 아무래도 언어적 유사성 때문에 일본학과 학생들이 듣기 편해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중국학과, 동아시아학과, 영문학과, 불문학과, 사회학과 등 학생들이 다양하게 옵니다.
한류 붐과 관련한 학생들 반응은 어떻습니까?
1~2년 사이에 학생들의 반응은 매우 달라졌습니다. 현지 신문에 슈퍼주니어에 대한 기사가 나와 있는 것을 본 적도 있고 심지어 한 고등학생이 한국 비보이들에 반해서 한국어를 들으러 온 적도 있습니다. 동방신기나 빅뱅 같은 유명 그룹의 멤버들 이름은 어렵지 않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샤이니나 동방신기 등 아이돌 가수들의 음악 동영상을 틀어주면 안무를 따라 하는 것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의 흥미를 어떻게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면서 수업 시간에 짬짬이 한국문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수업 중에 한 번씩 한국가수들의 최근 노래를 틀어주다가 나중에는 사물놀이 등으로 대상을 옮기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관심을 한국문화 전반으로 확대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의 교재는 어떤 걸 쓰는지 그리고 학교 내 한국관련 서적 현황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한국어 교재로는 서울대학교 어학연구소에서 나온 교재를 쓰고 있는데 구문연습과 문법 중심으로 되어 있어 지루해하기도 합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가르쳐야 하기에 다른 교재로 바꾸는 것
도 어렵습니다. 향후 슬로베니아어로 된 한국어 교재가 나왔으면 합니다. 학교 내 한국 관련 서적 현황은 매우 열악합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보내온 책이 대부분일 것 같은데 1,550권 정도가 있습니다. 일본학과 중국학 전공 관련 도서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많이 빈약하죠. 많은 분들의 도움을 기대합니다.
한국 정부 또는 한국국제교류재단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냉정하게 볼 때 우리는 아직 일본학이나 중국학에 비해 보급이나 발달이 뒤떨어집니다. 한국 정부나 재단의 노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해외에 나와서 근무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아쉬운 점들이 보입니다.
예를 든다면 여기서 일본이나 중국(또는 대만)에 가는 학생들은 교환학생으로 가더라도 자기 돈을 내고 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 가는 교환학생으로 학생들은 자기 돈으로 비행기 삯, 집세, 생활비 등을 모두 부담해야 합니다. 결국 좋은 학생들이 다른 전공을 선택하게 되니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죠.
우리 정부도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사례를 중심으로 정책을 정교하게 다듬을 기회를 가졌으면 합니다. ‘溫故而知新’ 정확하게 말해서는 ‘溫他而知新’이라고나 할까요? 또 저와 같이 외국대학에서 한국학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을 만나 보면 경험도 많고 아이디어도 많이 가지고 있으니 이렇게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면 굉장한 발전이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또 외국대학의 한국어 교수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입니까?
“외국에 나와서 한국학 강의를 하다 보면 아직도 필요한 책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 중 극히 일부라도 손을 대고 싶습니다. 이제 세상은 정말 좁아졌습니다. 앞으로 한국 바깥에서도 좋은 인재가 나와서 한국의 학자들을 긴장시킬 날이 멀지 않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슬로베니아에서 한국어를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는 6~8개국 언어를 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런 학생들이 한국어 연구를 하면 어떨까요? 저는 이런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연구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가 일정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得天下英才而敎育之’의 기쁨은 한국에서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이 교수는 인터넷 덕분에 한국에서 저녁 8시에 방영한 드라마를 슬로베니아에서도 동시간대에 시청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 관련 소식은 거의 실시간으로 얻는다. 한국 문화에 대한 최근의 높은 관심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한국학 전반적으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 문화가 이처럼 확산되는 경험이 없었기에 콘텐츠의 개발과 한류의 확산을 이야기하면서도 우왕좌왕하는 측면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학을 알리는 첨병인 그의 목소리를 소중하게 살렸으면 싶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