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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영성, 관객, 그리고 무당

007년 10월 중순, 국립극장은 <네 줄기 강물이 바다로 흐르네>라는 제목의 새로운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네 명의 주요 작곡가들에게 의뢰하여 작곡된 새로운 음악 작품을 국립국악관현악단과 특별 초청 예술가들이 연주한 공연이었다. 이 작품은 국립극장의 주 공연장(해오름극장)의 3개 층을 가득 채운 관객 앞에서 공연되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관악기, 현악기, 타악기를 담당하는 약 50명의 남녀 연주자들로 구성되었으며, 모든 악기는 한국의 전통악기였다. 작곡된 곡은 도교, 불교, 무교, 기독교 등 한국의 종교를 주제로 한 작품이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유교를 제외하고 한국의 종교를 이렇게 네 가지로 정리했다. 공연프로그램 인쇄물에서 국립극장장은 도교, 불교, 무교, 기독교가 한국인의 정신세계와 영혼을 반영하는 네 가지 종교라고 말했다. 어쨌거나 무교(무속신앙)가 언급되었길래 나는 공연을 보러 갔다. 사실 그날 아침 나는 함께 일하는 무당 중 한 분으로부터 휴대전화 문자를 통해 초대를 받았다. 문자 메시지 내용은 이러했다. ‘서경욱 만신과 국립국악관현악단이 국립극장에서 공연을 합니다.’ 나는 ‘서경욱 만신이 그렇게 훌륭한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면 내가 꼭 가봐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나는 남산 자락에 있는 이 우아한 공연장으로 향했다.



내가 한국의 현대 무속에 관해 현지조사를 하기 위해 한국에 온 지도 이제 9개월이 되었다. 이번 공연은 요즈음 한국의 무당들이 초청받아 공연하는 새롭고, 또 놀랍기까지 한 장소 중 하나에서 이뤄진 것이었다. 한국의 모든 무당들이 그들의 전통을 선보이기 위해 멋진 무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20만 명이 넘는 무당들이 등록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점을 치고, 악운을 막고, 불가사의한 질병을 치유하고, 복을 빌고자 하는 고객들을 위해 개인적인 차원에서 굿을 한다. 동시에 이들 종교적 행위자 중 상당수는 소위 말하는 ‘큰 무당’이 되어 대중을 위한 무대에서 제의를 행하는 영광을 안게 된다.

공연 중 20분 간의 휴식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국립극장의 불이 환하게 켜졌다. 무교에 관한 부분이 시작하기 바로 전이었다. 휴식시간에 흰 종이술이 달린 여러 개의 막대기와 화려한 비단 깃발, 전형적인 무당의 모자와 함께 나지막한 상이 무대로 옮겨졌다. 몇 개의 장구, 바라, 종 등은 무대 위 방석 앞에 놓여졌다. 이것들은 한국의 굿에서 사용되는 실제 도구이자 악기이다. 관현악단도 함께 했는데, 그들은 앞에 악보를 놓고 서양식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나의 지인이 등장하기를 조바심을 내며 기다렸다. 서경욱 만신은 곡의 1/3 정도가 연주되었을 때 부채를 활짝 펴 들고 당당하게 걸어 나오면서 환호하는 관객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맑은 목소리로 오래된 무가를 부르면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뒤에 있던 관현악단은 물론 무대 뒤의 합창도 전혀 그녀를 방해하지 않는 듯 했다. 작곡가가 음악에 도입한 모든 변화 속에서도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서경욱 만신은 최영 장군 당굿으로 유명한데, 이런 굿을 할 때에는 짐승 공양, 칼로 스스로를 찌르는 행위, 작두타기 등이 포함된다. 특히 두 개의 날카로운 칼날 위에 올라타는 작두타기는 그녀가 일반적으로 행하는 굿에서 대개 절정에 달하는 순간을 표현한다. 그러나 이번 무대에서는 도살된 소에서 직접 꺼낸 날고기를 먹는 광란의 흔적이나 그녀에게 내린 신이 그녀를 화나게 만들 때 나오는 분노의 시선 같은 것 없이 그냥 춤만 추고 노래했다. 이것은 신당이 아니라 공연장에서 행하는 공연이고, 서경욱 만신은 이런 경우에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잘 아는 무당이다. 우아한 춤사위와 노래는 실제 굿에 손색없이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것은 음악을 사랑하는 관객들에게 감흥을 주는 의도 외에 실제로 어떤 영적인 의도는 없는 예술공연이었다. 그래도 서경욱 만신은 춤을 추기 위해 초대된 사람이었다. 그녀는 단순한 직업 무용가가 아니다. 그녀는 의식에 쓰는 자신만의 무구와 무복을 사용했으며, 복을 내리기 위해 부채를 흔들어대자 관객들은 환호했다. 이것이 바로 ‘포스트모던’이 아닐까?

한국의 무속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가장 높은 인터넷 이용률, 고속성장의 경제, 서울의 고층빌딩 풍경과 과연 그것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가 궁금했다. 그 이후 나는 한국문화의 다른 부분과 마찬가지로 이곳의 규칙에 ‘배제(exclusion)’라는 것은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뚜렷한 갈등 없이 동시에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 굿을 하기 위해 번쩍이는 검정색 스포츠 카를 산으로 몰고 가면서 무당은 자신의 전통이 3백 년 전에 행해지던 것과 똑같이 그대로 행해진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분법은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구경꾼인 외부인의 눈에서만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이 모든 것이 가능하며, 그런 점이 이곳을 더욱 매력적이고 흥미진진한 곳으로 만든다. 현지조사를 하면서 얻은 경험을 통해 나는 한국의 무당들도 내가 운 좋게도 이곳에 있는 동안 만났던 대부분의 한국인들처럼 사랑과 근심, 기대, 다툼,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친절하고 관대하며 유머감각이 있고 착한 성격을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