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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목표를 향한 뜨거운 열기

2007년 봄, 재단은 해외 한국학 진흥사업을 더욱 내실있게 추진해 나가기 위해, 국내외의 한국학 전문가들로 북미, 유럽, 대양주 등 각 지역별 자문위원회를 발족한 바 있다. 현지의 한국학 현황 및 사회경제적 환경을 감안하여 차별화된 지원전략을 수립하고, 개별 사업신청서 평가의 전문성을 제고해 나가는 데 있어 재단은 자문위원회의 역할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재단이 지난 10월 12일과 13일 미국 시애틀 소재 워싱턴대학교에서 개최한 ‘제1회 한국국제교류재단 한국학사업 북미 자문위원회’는 향후 재단 한국학 사업의 방향 설정에 있어 그 의의가 자못 중대하다고 할 수 있겠다.



북미지역의 한국학 진흥을 위해
재단의 임성준 이사장 등 임직원 4명과 자문위원 11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회 한국학사업 북미 자문위원회 회의에서는, 북미 한국학의 현황과 당면 과제를 점검하고 개선방안을 집중적으로 논의함으로써 향후 10년간 북미지역의 한국학 진흥을 위한 전략을 수립하고자 하는 열띤 논의가 주말 내내 쉼없이 이어졌다. 회의 첫째 날인 10월 12일 오후에는 먼저 북미지역 대학들이 재단에 제출한 2008년 사업신청서 총 20건에 대한 평가회의가 개최되었다. 과거에 서면평가에만 의존하던 방식을 개선해 각 위원별로 사전 서면평가를 거친 후, 회의를 통해 5명의 Subcommittee for institutional projects 위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개별 평가 의견을 조율, 자문위 전체 결론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통해 한층 균형있고 수준높은 평가가 가능했다. 만일 각 신청기관의 관계자가 동 세션에 참석했더라면, 얼굴이 다소 붉어졌을 지도 모를 예리하고 솔직한 지적들이 인상 깊었던 회의였다.
회의 2일차인 10월 13일에는 재단 임성준 이사장이 북미지역 한국학에 대한 지속적 지원의지를 표명하고, 학문영역별/시기별로 서로 다른 환경과 수요-공급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를 면밀히 검토하여 보다 정교하고 장기적인 지원계획을 수립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의견을 피력하는 것으로 활발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회의 참가자들은 먼저 <2006 한국학(인문학) 진흥 워크숍 전략보고서>와 <2005 사회과학 진흥 워크숍 전략보고서>에서 제기된 주요 현안과 제언을 검토했다. 컬럼비아대학교 김자현 교수는 인문학 분야 요약 발표를 통해, 현 단계 북미 한국학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국에 대한 인문학 지식이 창출되고 후학이 양성될 수 있는 기관들을 구축(institutional settings)해 내는 것이며, 특히 필수 분야별로 한국학 교수진을 보유하고 우수한 대학원생 배양 역량을 보유한 주요 대학교들(center universities)에 이러한 노력을 집중할 것을 역설하였다. 사회과학 분야 발표를 맡은 스탠퍼드대학교 신기욱 교수는, 교수 임용과 대학원생 교육, 한국학 연구 과정 모두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북미내 ‘주류 사회과학’과 ‘지역학’간의 긴장관계(tension)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사회과학 분야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교수직 설치보다는 소장 학자들의 경력개발과 대학원생 교육에 더욱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함을 권고했다.

가지 않은 길 위에서
참가 학자들과 재단 임직원들의 치열한 그러나, 한국학 진흥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공유한 데서 오는 우정어린 회의 분위기는, 잠시 동안의 도시락 점심시간을 지나 오후 세션에까지 그대로 이어졌다. 이어진 회의에서 가장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재단의 대학원생 장학제도 개선에 관련된 제언들이었다. 현행 장학제도가 그간 후계 학자 양성에 다대한 기여를 해 온 것은 사실이나, 이제 더욱 정교하고 포괄적인 지원체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 모든 자문위원들의 의견이 모아졌다. 장학금액 인상, 다년간 지원제도(multi-year grant)의 도입 필요성이 제기되었으며, recruitment 단계와 박사논문 작성단계에도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었다. 또한, 대학원생 및 박사후과정펠로십 문호를 한국국적 유학생에게도 개방함으로써 북미 내에서 박사과정 종료시기에 있는 한국국적 유학생들을 한국학 분야로 유도해내는 것이 특히 사회과학 분야와 pre-modern 분야에서는 꼭 필요하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장학제도 개선에 대해서는 자문회의 개최이후 재단의 연구장학사업부가 사업개선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회의에서 제기된 많은 귀중한 충고와 제안들에 대해서 재단은 사업수행시 최대한 반영하여, 북미 한국학 진흥에 더욱 효과적으로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
해외 여러 지역 중에서도 특히 북미지역의 한국학은 학문적 수준과 규모 두가지 측면 모두에서 여타 지역 한국학의 선행모델이자 해외 한국학의 중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수직과 강좌들이 다수 설치되고, 주요 대학들에서 우수한 대학원생들이 양성되는 등 북미 한국학은 꾸준한 성장을 일구어 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미의 주류 학계에서 한국학은 아직 확고한 제 자리를 차지하지 못 한 것 같아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주말내내 머리를 맞대고 토론에 몰두하던 자문위원들의 한국학에 대한 헌신과 애정을 보면서 필자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떠올린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어 나는 사람이 덜 다닌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을 이처럼 바꿔 놓은 것입니다.’
젊었던 그때, 한국학이라는 힘들고 외진 길을 택했던 북미 한국학자들은 그들의 인생이 바뀌는 것을 목도했다. 이제 나는 그들이 장차 북미의 한국학을, 그리고 북미의 주류 학계까지도 바꿔 놓을 수 있다는 희망을 더 높이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