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F 산책]
한수진 대리가 추천하는 영화 <카조니어>
영화의 제목 <카조니어>는 '셀 수 없이 많은 돈을 가진 사람(Kajillionaire)'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정작 영화에서는 제목과는 반대로 월세 500달러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가족이 등장합니다. 아빠, 엄마 그리고 딸로 구성된 이 기이한 가족은 일반적이고 정기적인 수입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속여 돈을 받아내거나 남의 우편함을 털어 나오는 물건을 되팔기도 하고, 또 온갖 이벤트에 참여해 당첨된 물건들을 되파는 식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갑니다. 말 그대로 ‘돈이 되는 건 무엇이든지 한다’는 주의로, 가족이 완벽한 한 조가 되어 매일 사기를 일삼으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번 돈은 정확히 3분의 1로 나누고, 생활비도 3분의 1로 칼같이 나누어 내면서 말입니다.
딸인 ‘올드 돌리오’는 여느 또래들처럼 학교에서 평범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서명 위조와 CCTV를 피해 도둑질하는 법 등 범죄 수법들을 훈련받으며 커왔는데요. 어느 날 우연한 계기와 새로운 사람을 통해 자신과 부모, 그 가족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올드 돌리오는 깨달음과 동시에 그간 무감각했던 성장기의 결핍들을 한꺼번에 느끼며 큰 혼란을 겪게 되는데요. 안주와 탈주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인공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처음에는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짧은 줄거리만 보고 특이한 가족이 등장하는 코미디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초반에는 코믹한 부분도 있지만 점점 범죄 영화였나 싶게 진지해지다가 결국에는 성장 영화였다고 결론짓게 됩니다. 미국 인디영화이다 보니 대중의 취향과는 거리가 먼 편이어서 보는 내내 ‘정말 이상하다, 특이하다’ 하는 찝찝한 기분이 들지만 이 역시 의도된 반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인공은 비정상에서 정상을 깨닫고, 그런 주인공을 보며 우리는 정상에서 비정상을 바라보는데요. 여기서 우리가 낯설고 혼란스러운 기분을 느끼는 것이 주인공의 감정을 역으로나마 경험한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니 한 사람에게 있어 양육 환경과 교육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상적인 가족이란 무엇인가, 전통적인 정의를 벗어나 아예 새로운 구성원의 결합이 가족이 될 수 있는가 등 여러 갈래로 다양한 생각이 이어져 흥미로웠습니다. 보는 내내 엉뚱하고 기묘한 느낌을 받으면서도 결국에는 주인공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며 응원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모두의 취향에 맞을 것이라고 자신할 수는 없지만, 새로운 영화를 시도해 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합니다. 의외의 재미를 발견하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