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 전성기를 이끄는 웹드라마의 무한 변신
신정아(문화콘텐츠 비평가)
숏폼은 모바일에 최적화된 짧은 길이의 동영상 콘텐츠다. 숏폼 콘텐츠는 언제 어디서나 스마트폰만 있으면 쉽고 간편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Z세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포맷이다. Z세대는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연령층으로 인터넷과 모바일이 대중화된 환경에서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콘텐츠 트랜드 조사기관인 메조미디어에 따르면 Z세대를 포함한 1020 세대들이 가장 선호하는 동영상의 길이는 15분이고, 10대의 경우 동영상 1회 시청 시 선호하는 길이가 10분 미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에서도 웹드라마는 숏폼을 대표하는 인기 장르로 8~15분 길이 속에 일상의 다양한 감정과 관계를 흥미로운 스토리로 표현하는 것이 특징이다.
한국에서 웹드라마가 처음 등장한 시기는 2013년이다. 초반에는 기업의 홍보용으로 제작된 브랜디드 콘텐츠가 시작이었다. 국내 최초의 웹드라마로 알려진 교보생명이 후원한 ‘러브 인 메모리’(6부작)는 서점을 배경으로 7년 전 헤어진 남녀가 재회하는 스토리다. 당시 인기 배우였던 조윤희와 정겨운이 열연한 웰메이드 콘텐츠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기존 TV 드라마의 축소판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반면 굴소스로 유명한 이금기소스 협찬으로 제작한 ‘출출한 여자’(6부작)는 30대 초반 여성의 직장 생활, 연애, 우정 등을 소재로 펼쳐지는 현실 이야기로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 재영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그날의 기분과 상황에 맞는 요리를 해 먹는 것이 콘셉트였다. 이처럼 초반의 웹드라마는 몰입감 있는 스토리 속에 브랜드의 이미지나 상품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브랜디드 콘텐츠가 대부분이었다.
웹드라마의 무한 확장성을 보여준 사례는 2013년 개봉된 모바일 무비 ‘미생 프리퀄’(6부작)이었다. 당시 1억 뷰를 돌파했던 윤태호 작가의 인기 웹툰 ‘미생’을 각색한 작품으로,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은 사건과 캐릭터를 추가하면서 미생의 세계관을 확장했다. 프리퀄(prequel)이란 오리지널 콘텐츠의 전사(前史)로서 대표적인 트랜스미디어 콘텐츠 장르다. 트랜스미디어는 강력한 팬덤이 구축된 작품의 서사를 확장해 콘텐츠의 생명력과 팬덤의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미생 프리퀄’은 웹툰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과거를 상상해서 각 인물마다 독립된 에피소드로 제작했다. 흥미로운 것은 여섯 편의 프리퀄 드라마의 길이와 장르가 모두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안영이 프리퀄’(8분)은 학원 로맨스, ‘장백기 프리퀄’(5분)은 학원 공포물, ‘한석률 프리퀄’(5분)은 유년기 가족 드라마와 같이 원작에 표현된 각 캐릭터에 대한 호감과 정보를 높이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미생 프리퀄’의 성공 이후 한국의 웹드라마 생태계는 비약적 발전을 이루게 된다.
2015년에 제작된 ‘도전에 반하다’, ‘우리 옆집에 엑소가 산다’, ‘당신을 주문합니다’ 등과 같이 아이돌 주연의 작품이 누적 조회 수 1,000만을 돌파하면서 웹드라마의 전성기가 시작됐다. 2016년 10월 첫 공개된 와이낫미디어의 ‘전지적 짝사랑 시점’은 웹드라마 최초로 1억 뷰를 찍으면서 1020 세대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와이낫미디어는 1020 세대가 좋아하는 장르와 배우, 스토리를 분석해 세대의 눈높이에 맞는 웹드라마를 제작해 성공한 사례다. 이후 게임을 원작으로 제작한 ‘일진에게 찍혔을 때’는 웹소설과 오디오 콘텐츠로 확장하면서 새로운 IP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했다. 이처럼 웹드라마는 브랜디드 콘텐츠와 다양한 IP 비즈니스를 통해 새로운 스토리 유니버스의 중심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른바 ‘B급 감성’을 내세운 웹드라마 장르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유튜브 채널 ‘너덜트’의 코믹 숏무비다. 이는 현실에서 흔히 마주치는 인물과 사건을 코믹하게 풀어서 웃음을 주는 웹드라마 형식이다. 아내의 부탁으로 중고 거래를 나온 남편들 간의 현실 대화를 표현한 ‘당근이세요?’ 편(누적 조회 수 765만 회), 카페에서 공부하는 청년들의 찌질한 일상을 다룬 ‘카페 전기 도둑’ 편(누적 조회 수 764만 회) 등 ‘너덜트’의 경쟁력은 극사실주의적 기법으로 현실 속 이야기를 빠르게 스케치하고 표현하는 순발력과 기동성이라고 할 수 있다.
웹드라마는 정형화된 규격이나 장르가 없는 콘텐츠로서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미 제페토나 이프랜드와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에서도 아바타를 활용한 웹드라마 제작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어디서나 간편하게 꺼내 볼 수 있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몰아서 보거나 골라서 보는 재미를 제공하는 웹드라마는 현대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소통의 미디어로 진화하고 있다. 다만 광고를 목적으로 제작하는 웹드라마의 상업성과 알고리즘을 이용한 과도한 추천 서비스는 이용자의 피로도를 높이는 문제로 지적된다. 또한 인터넷에서 유통되는 콘텐츠의 특성상 표현의 규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자극적 소재와 폭력적 재현, 혐오 표현에 대한 규제가 어려운 것도 현실이다. 동시대인의 감성과 문화를 대표하는 일상 미디어로서 웹드라마의 영향력이 증가한 만큼 창작자의 문화적 감수성과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더욱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