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학술교류진흥처(DAAD: Deutscher Akademischer Austauschdienst)는 1925년 독일과 외국의 학술교류를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으로, 나치정권에 의해 잠시 공백기를 갖다가 1950년 재설립되어 현재는 직원 300여 명에 연간 사업 예산만 230만 유로에 이른다. 예산은 독일 연방정부의 외무부와 교육부로부터 받고 있으나 모든 사업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독일 본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런던, 뉴욕, 뉴델리, 북경 등 14개 해외 주요 도시에 지역사무소가 있다. 행정은 사무총장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이사회가 최고 의사결정기관이다. 특징적인 것은 3명의 학생대표가 이사회에도 참가하고 있다는 점인데, 이는 국외 유학 장학금을 지원해 달라는 학생들측의 요청을 정부가 수용하여 DAAD를 설립하였기 때문이다.
대학의 국제화와 개도국 교육개혁 지원주요 사업은 크게 해외 우수 학생들의 독일대학 학위과정 이수 및 독일 학생들의 해외 유학을 지원하는 장학금 지원, 개발도상국과 동유럽국가들의 대학개혁 지원, 주요 국가들의 독일 언어문학 지역학 발전사업 등으로 구분된다. 이를 위해 약 200여 개의 프로그램을 운영 중에 있으며, 연간 수혜자 수는 약 67,000명으로, 지원대상자 선발에 참가하는 학자들만 해도 약 500명에 달한다.
필자가 인상깊게 본 것은 대학의 국제화와 개발도상국의 교육개혁에 대한 지원이었다. 독일어라는 제2외국어가 안고 있는 언어 장벽과 학·석사통합과정으로 운영되는 학제로 인해 독일 대학의 경쟁력이 점차 떨어지고 있다는 위기 의식 속에서, DAAD는 영어로 진행되는 석·박사학위과정을 도입하도록 많은 대학들을 적극 지원하여 영어 학위과정을 신설하도록 하였다. 또한, 마케팅부를 신설하여 해외 박람회를 개최하며 적극적으로 우수 학생들을 독일로 유치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개발도상국의 교육개혁을 위한 컨설팅이나 회의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여 각 국가들의 교육현안 해결에 도움을 주고 있다. 예를 들어, 불가리아의 교육개혁을 위한 회의경비를 지원했는가 하면, 아프가니스탄 카불대학 재건을 위해 교수 양성도 지원하고 있다. 이는 독일의 교육제도와 이념을 전파하기 위해서라기 보다 국제사회에서 독일이 갖고 있는 위상에 걸맞은 해외 원조라 할 수 있다.
특정 정당과 이념을 공유하는 공익재단필자는 연수를 위해 독일의 DAAD에 머무르며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이나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과 같은 공익재단을 살펴 볼 기회도 가졌다. 독일만이 가지고 있는 특이한 형태인 이러한 재단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국민의 정치의식이 고양되면서 생겨났다. 이들 공익재단은 각각 특정 정당과 이념과 목표를 공유하고 있다.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은 기민당과,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사민당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은 자민당과, 하인리히 뵐 재단은 녹색당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 지향점의 공유에도 불구하고, 예산 사용은 엄격히 구분된다. 대부분의 공익재단들은 민주주의, 인권 등에 대한 대국민교육이라는 목표를 공유하면서도 각 재단의 특성에 따라 더욱 주요한 관심분야에 대해 여러사업을 펼치고 있다. 예를 들면,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은 법 개혁, 프리드리히 에버트 재단은 노동조합, 프리드리히 나우만 재단은 지방자치, 하인리히 뵐 재단은 환경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이렇듯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공공기관에 대해, 심지어 특정 정당의 이익에 기여하는 듯한 공익재단에까지 정부가 지원하고 있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없는 일은 가족이, 가족이 할 수 없는 일은 사회조직이, 사회조직이 할 수 없는 일은 정부가 나선다는 국민의식의 산물이다. 예를 들면, 얼마 전 있었던 독일 동부의 수재 시에 대부분의 구호활동은 정부의 예산을 받은 적십자사와 같은 구호기관에서 하고, 정부는 도로, 전기 재건 등을 담당하는 식으로 복구사업이 이루어졌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으며, 정부가 직접 하기보다 다양한 공공기관을 지원하여 간접적으로 사회·문화·교육을 지원하는 독일 체제가 오늘의 독일이 보다 열린 사회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