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백태현(키르기스스탄 중앙아시아 한국대 객원교수)
(Korea Institute of Centeral Asia in Kyrgystan, KF Visiting Professor, Taehyun Baek)
1996년 6월 카자흐스탄 알마티에 도착해 그해 9월부터 ‘카자흐국립대’ 한국어학과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후 1998년 9월에 인근의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국립대(전 비슈케크인문대)’로 옮겨 2018년 9월까지 만 20년을 그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쳤다. 비슈케크국립대에서는 2004년부터 외국인으로는 드물게 한국학과 학과장으로 재임했다. 이후 현재까지 근무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한국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꽤 오래 머물고 있는 셈이다.
1996년 처음 카자흐스탄에 도착한 무렵에는 구소련이 해체되고 중앙아시아 지역 국가들이 독립(1991년 독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 무렵이 체제 이행기의 변혁기였기 때문에 소위 ‘공부할 거리’가 아주 많았다. ‘그 큰 구소련이 왜 해체됐을까’ 하는 의구심과 더불어 중앙아시아 전역에 거주하는 고려인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두 가지 의문과 놀라움에 대한 답을 동시에 탐구하기 위해 대학원 연구 주제로 ‘중앙아시아 고려인의 고본질’을 선택했다. 고본질이란 구소련의 집단농장(콜호즈와 소포오즈)이라는 사회주의적 농업생산시스템 내에서 독립채산체의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으로 전개됐던 독특한 생산체계를 이르는 말로, 이러한 연구 주제를 선택함으로써 구소련과 중앙아시아의 사회경제적 변화상 그리고 그 속에 거주하고 있는 소수 민족이었던 고려인의 사회경제적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초창기에는 수업이 없는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방학 등 시간이 날 때마다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을 답사하며 1937년에 연해주에서 이주해 온 강제 이주 고려인 1세대와의 인터뷰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카자흐스탄의 우슈토베, 잠블(현 타라즈), 침켄트, 크즐오르다, 키르기스스탄의 비슈케크,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와 그 인근 지역, 타지키스탄을 비롯해 특히 고려인 밀집 지역이었던 우슈토베는 40여 차례 방문했다.
초창기에 중앙아시아 여러 지역을 탐방하고 고려인과의 인터뷰에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 중요한 산 경험이 됐다. 무엇보다 체제변혁기를 거치고 있는 젊은 학생들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한국학이 과연 이들의 삶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이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과 눈물을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씻어 줄 수 있을 것인지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데 도움이 됐다. 키르기스스탄에 온 이후 상당 기간 대학에서 한국의 역사와 문화, 정치, 사회, 경제 등 전반적인 한국학을 가르치고 있다. 다행히 학생들은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처음에는 어려워했지만 점차 한국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깊어지고 한국학을 왜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 의식과 그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 한국이 경험한 정치•사회•경제적 교훈이 향후 키르기스스탄의 국가 발전을 위한 중요한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실천적인 한국학의 가치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한국대학’은 2017년에 개교한 작은 대학이지만 중앙아시아 지역의 한국학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22년 9월에는 대학원에 한국어 전공과 한국학(지역학) 전공을 개설해 체계적으로 한국학 연구자를 배출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학생들이 한국학 강좌를 수강하면서 동시에 한국어 실력도 향상되는 시너지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학생 수 대비 TOPIK(한국어능력시험) 6급과 5급 합격자가 상당히 많이 배출되고 있다는 점에서 한국학 중심 강소 대학으로서의 면모도 갖추고 있다.
‘한국대학’은 그 이름처럼 한국학이 대학 전체의 토대를 이루고 있다. 한국학 수업 때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에 한국 문화의 특징이 담겨있음을 수업 현장에서 늘 접하게 된다. 한국학 교육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며, 매 수업을 통해 그 중요성을 현장에서 실천하고 있다.
2022년 한국의 날 기념 공연 후 단체 사진
중앙아시아 한국대 수업 장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