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시장의 실험과 도전 그리고 미래
김진우(중앙대학교 예술대학 겸임교수)
현재 JYP엔터테인먼트에서 ‘A2K(America2Korea)’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와 미국 리퍼블릭 레코드(Republic Records)의 합작인 이 프로젝트는 북미 현지에서 오디션을 통해 멤버를 모집하고, 여기에 JYP엔터테인먼트의 트레이닝과 K-팝 프로듀싱 시스템을 더해 글로벌 K-팝 걸그룹을 론칭한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물론 JYP엔터테인먼트의 이러한 시도는 처음이 아니다. 몇 년 전 일본에서 동일한 방식으로 일본 현지 걸그룹을 제작하는 ‘니지’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친 바 있는데, 이번에는 장소를 미국으로 옮긴 것이다. 하이브 역시 유니버설 뮤직(UMG)과 손잡고 글로벌 걸그룹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며 연내에 발표할 예정이다.
유튜브에 올라온 A2K 프로젝트 선발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면, 참가자 대부분이 여러 인종의 외국인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까지 대중이 생각해 온 K-팝 걸그룹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른바 ‘K-팝의 세계화 3.0’ 버전이다. K-팝은 지난 20여 년간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하며 그 영토를 확장해 가고 있다. 2000년대 초 ‘K-팝의 세계화 1.0’에서부터 2010년대 해외 현지 멤버를 일부 영입해 팀을 꾸리는 ‘K-팝의 세계화 2.0’ 단계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사실 K-팝 시장이 이처럼 해외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요즘 아이돌 팬덤의 연령대가 10대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넓어졌다고는 하지만, 코어 팬덤 층은 10대와 20대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 이미 고령사회로 접어들었으며, 2025년에는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된다. 이러한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10대와 20대의 국내 아이돌 코어 팬덤 층은 시간이 갈수록 그 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K-팝의 해외 시장 진출은 사실상 아이돌 업계의 생존이 달린 문제이자 필연적 선택인 것이다.
K-팝 프로듀싱 기술을 기반으로 해외 현지 아이돌을 제작하는 ‘K-팝의 세계화 3.0’은 이수만 전 SM엔터테인먼트 총괄 프로듀서가 2000년대 초부터 말해온 ‘문화’와 ‘기술’이 만나는 ‘컬처 테크놀로지(Culture Technology)’라는 개념과 유사하다. 전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언론 인터뷰 중에 이런 내용이 있다. 도자기를 만들 때 문하생을 들여 도제식 교육으로 기술을 전수하는 게 일반적인데, 그보다는 도자기 제조 기술을 성문화해 전수하면 그에 대한 저작권 사용료를 받을 수 있고, 나아가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 말에는 앞으로 다가올 ‘K-팝의 세계화 4.0’에 대한 힌트가 숨어 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코트디부아르 국가대표 선수가 태권도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적이 있다. 당시 대한민국의 국기인 태권도 종목에서 어떻게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놓칠 수 있냐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하지만 세계 태권도 인구는 약 7,000만 명으로 대한민국 인구보다 많다. 태권도는 더 이상 우리만의 스포츠가 아닌 전 세계인의 스포츠이기에 해외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잠시 스포츠 경기에 비유해 이야기했는데, 이것이 앞으로 다가올 K-팝 시장의 미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2022년 미국의 3대 대중음악상 중 하나인 ‘아메리칸 뮤직어워드(AMA)’에서 페이보릿 K-팝 아티스트(Favorite K-Pop Artist) 부문이 신설됐다. K-팝이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신호로 볼 수 있다. 지난해에는 우리 아이돌 가수들만 후보에 올랐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K-팝 프로듀싱 기술로 제작한 해외 아이돌, K-팝 제작 기술을 전수받은 해외 제작자에 의해 만들어진 해외 K-팝 아이돌이 국내 토종 아이돌과 글로벌 음악시장에서 경쟁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K-팝 프로듀싱 기술로 제작돼 활동 중인 필리핀 아이돌 그룹 ‘SB19’은 2020년 12월 빌보드 톱 소셜 50 아티스트에 이름을 올린 바 있다.
물론 이 대목에서 어디까지가 K-팝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인 멤버가 있어야 K-팝인가 아니면 한국어 가사가 한 줄이라도 들어가야 K-팝인가 등등. 하지만 K-팝은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성장하며 그 세를 확장해 가고 있다. 최근에는 K-팝에서 K를 떼어내는 쪽으로도 진화하고 있다. 이쯤 되면 K-팝은 생존과 영역 확장을 본능으로 하는 살아 있는 생명체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쩌면 태권도라는 우리 고유의 전통 무술이 전 세계인의 스포츠가 된 것처럼 K-팝도 하나의 음악적 장르 또는 프로듀싱 스타일로 세계인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단기적 흥행을 떠나 K-팝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 본 기사는 전문가 필진이 작성한 글로,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