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숨어 있었냐고?”: 미술 한류의 근원은 ‘경제 논리’
김문영(MBN 기자)
실험미술의 선구자, 만 81세의 이건용 작가가 기자에게 말했다. 최근 초청받아 미국에 간 이건용 작가가 달팽이 걸음 퍼포먼스를 세 차례 선보였더니 뉴욕의 시민들이 “그동안 어디에 숨어 계셨느냐”라고 말하며 눈물을 글썽였다고 말이다. 그 말을 듣고 웃었지만 이 작가는 안타까웠다고 한다. 1979년에 시작한 자신의 퍼포먼스를 그대로 보였는데 2023년에 “왜 이제 나타났느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참 당황스러웠다는 것이다. 이미 프랑스 파리와 브라질 상파울루 등에서의 세계적인 전시에 참여한 국내의 거장이지만 이건용 석 자는 뉴욕에서 아직 낯선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구겐하임 미술관 관계자들 10여 명도 앞선 페이스 갤러리에서의 퍼포먼스 때에서야 이건용을 처음 봤다고 입을 모아 고백했다고 한다. 그러한 구겐하임이 이건용과 김구림과 성능경 등을 나란히 주목하며 한국의 1960~1970년대 전위미술을 조명하고 있다.
단숨에 화제가 된 작가는 이들뿐만이 아니다. 변방으로 취급됐던 한국 미술이 최근에는 미술관 전체 차원에서 여는 기획전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 3대 미술관인 메트로폴리탄이 ‘리니지(계보): 메트에서의 한국 미술’ 전시를 통해 세계화 이후의 한국의 모습을 소개한다. 미국 필라델피아 미술관도 북미 지역 최대 규모로 한국의 미를 다루는 전시를 기획한다.
꾸준히 작업을 해온 작가들로서는 얼떨떨할 수밖에 없지만, 이러한 ‘미술 한류’의 기저에는 해외에서 힘이 세진 한인들의 커뮤니티가 있다. 당장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안휘경 큐레이터가 활동하고 있고,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도 2021년부터 우현수 큐레이터가 부관장을 맡고 있다. 삼성전자 등 국내 기업들이 이어온 후원도 메이저 갤러리들의 한국에 대한 거리감을 좁혔다. 국가의 빠른 경제 성장과 맞물려 해외에서 발언권을 가질 위치에 선 한인이 많아진 것이다.
더 근본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시장성을 따지는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한국을 영업의 장으로 보는 시선이다. 문화적으로 위상이 달라진 한국에서 진행하는 아트페어, 또는 한국 미술을 다루는 전시가 더 많은 컬렉터들과 관람객을 모을 것이란 기대가 크다. 실제로 국제 아트페어인 프리즈의 2년 연속 서울 개최를 결정한 패트릭 리는 K-팝과 봉준호·박찬욱 감독 등을 필두로 한 K-영화가 있고 인프라까지 잘 구축된 문화의 도시인 서울이 아시아 시장의 교두보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귀띔했다. 한국의 문화 산업을 동경한 2023년의 프리즈 방문객들은 전년과 달리 여러 지방의 미술관까지 샅샅이 둘러본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진 분위기를 감안하면, 박서보·하종현 작가 등의 단색화에서 거슬러 올라 아방가르드 집단운동 등 한국의 계보를 찾아보려는 각종 러브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재빨랐던 국내 미술 시장의 회복세도 성장 가능성이 큰 마켓을 찾는 갤러리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투자의 관점으로 바라보면서 미술품 경매는 물론 부동산 인테리어 시장에까지 뭉칫돈이 몰린 국내의 폭발적인 미술 시장 호황이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이다. 아시아 미술 시장의 허브인 홍콩이 불안정한 정치 지형으로 빛을 잃은 사이, 중국보다 거래 규모는 작지만 2022년 기준 세계 시장의 매출액 7위까지 오르게 된 한국이 대안 시장으로서 빛났다. 미술 거래에 있어 부가세가 없는 구조와 일본에 비해 저렴했던 로컬 운송비 등도 최근 수년간 해외 유명 화랑들이 한국으로의 진입과 공간 확대를 결정하게끔 한 요인이다.
미술의 가치를 문화 트렌드 또는 경제적인 힘에 따라 알아보는 현상은 안타깝지만 작금의 현실이다. 다만 긍정적으로 해석할 부분도 있다. 이러한 미술 한류 덕에 전위미술과 수묵화 등 소외됐던 분야도 세계적으로 조명받고 있다는 점이다. 또 특기할 만한 사실은 미술 한류는 큰 정책적인 드라이브 없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척박한 환경이지만 예술 분야 간의 선순환 구조를 토양 삼아 꽃을 피울 가능성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미술 한류’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 본 기사는 전문가 필진이 작성한 글로, 한국국제교류재단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