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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무대에 선 한국의 연기자, 안성기

한국의 ‘국민 배우’로 존경받는 안성기 씨가 2008년 8월 26일부터 9월 5일까지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Korea Society),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의 프리어미술관(Freer Gallery), 조지아주 애선스(Athens)의 조지아대학(University of Georgia)에서 한국 영화와 자신의 연기 세계에 대한 강연을 하였다.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조지아대학 동양학연구소의 공동지원 아래 세 도시를 순회하며 열린 이 행사에서 안성기 씨는 진지하고 진솔한 태도로 아시아 스타의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안성기 씨의 이번 강연은 ‘세계무대에 선 한국의 연기자(A Korean Actor on the World Stage)’ 시리즈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리즈는 2007년 11월 조지아대학 비교문학과 한국어 프로그램에서 기획한 영화배우 박신양 씨 초청 강연이 시발점이 되었다. 영화와 텔레비전에서의 활약으로 아시아 각국에서 높은 인지도를 지닌 박신양 씨의 강연은, 강당을 꽉 메운 학생과 교수들의 열렬한 환영과 함께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이런 성공에 힘입어 2008년에는 안성기 씨의 초청 계획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 2007년 조지아대학의 교내 행사로 시작된 이 행사는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지원을 결정함에 따라, 미국 동부의 대도시에 한국을 알리는 행사로 규모가 확대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세 가지였다. 첫째, 한국을 대표하는 연기자들이 직접 미국 관객들을 만남으로써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을 넓히고 한국 문화를 홍보하는 것. 둘째, 한국의 연기자들이 미국의 영화 평론가 및 영화학도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눔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미국 영화계 주역들과 인적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것. 셋째, 아시아 지역에 한정된 ‘한류’의 확대를 위해 미주 한인들, 특히 영화계에 종사하는 젊은 세대의 역할을 모색해보는 것이다.

영화 상영과 관객과의 진지한 대화
이번 행사의 내용은 개최지의 성격에 따라 그 특색이 조금씩 달랐다. 안성기 씨의 뉴욕 방문은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주최한 한국 영화제 기간 중에 이루어졌다. 8월 25일부터 3일간 유니언스퀘어에 위치한 시네마빌리지에서는 <무사>,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우리 기쁜 젊은 날>, <라디오스타>가 상영되었다. 8월 26일 저녁에는 관객들과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고, 27일에는 안성기 씨의 강연이 있었다. 강연에 참석한 다양한 관객층 가운데 ‘한류팬’을 자처하는 한 무리의 일본 여성들은 단연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한류 배우들의 신상 정보와 사진을 모아놓은 책을 한 권씩 소지하고 있었다. 이날 모인 청중의 주된 관심사는 아역 배우로 출발한 안성기 씨의 연기 인생과 베테랑 연기자의 관점에서 본 한국 영화의 성공 비결 등이었다.
워싱턴에서는 8월 28일과 29일에 걸쳐 프리어갤러리에서 영화 상영 후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둘째 날 <라디오스타> 상영 때에는 극장이 만석이 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관객들은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사고를 하는 ‘박민수’라는 인물처럼, 겸손하고 따뜻하며 연기자로서 한길을 걸어온 배우 안성기 씨에 대해 뜨거운 찬사를 보냈다. 또한 주미 한국대사관 부설 코러스하우스(KORUS House) 주최로 각국 대사관의 영화 담당자들과 워싱턴 지역 영화학 교수, 신문사와 잡지사 기자들이 참석하는 비공개 간담회도 열렸다. 이들은 현대 한국 영화와 역사를 함께해온 안성기 씨의 커리어, 그가 맡고 있는 한국배우협회 회장과 부산국제영화제 부위원장직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했다. 이와 함께 현 정부의 영화 산업 정책과 스크린 쿼터제, 정부 차원의 한국 영화 해외 홍보 전략 등에 대한 질의도 이어졌다.
조지아대학에서는 안성기 씨의 강연을 앞두고 그의 대표작 여섯 편을 상영하였다. ‘동아시아 영화’ 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은 과제물 등을 통해 안성기 씨가 출연한 다양한 장르의 영화와 그의 연기 스타일을 집중적으로 분석했다. 안성기 씨는 강연을 통해 최근 한국 영화가 이룬 놀라운 성과는, 오랫동안 누리지 못했던 표현의 자유가 영화인들의 창의성, 사회의 민주화, 영화계에 유입된 대기업의 자본을 만나면서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분출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지금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예술적인 상상력을 기르는 여러 방법 가운데 독서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영화인에 대한 관심과 지원 필요
‘세계무대에 선 한국의 연기자’ 프로젝트는 한국 영화 산업의 중심에 서 있는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관이나 인생 체험을 다른 문화권에 직접 생생하게 전달함으로써, 한국의 연기 전통과 영상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증진시키려는 취지에서 기획되었다. 그동안 아시아 스타는 마치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같이 여겨졌던 미국인들에게 안성기 씨의 진지하면서도 소탈한 모습은 아시아 스타의 인간적 측면을 새롭게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이런 만남을 통해 문화적 이질감을 극복하고 영화를 통한 국제적인 소통이 더욱 활발해지리라고 본다.
이번 순회강연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1990년대 이전의 영화 필름을 구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필름의 보존 상태가 양호하지 못한 데서 오는 제약과 영어 자막의 부재는 한국의 영상 문화를 해외에 체계적으로 소개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다. 지난 20년간 한국 영화는 다른 어떤 예술 장르보다도 한국 문화를 홍보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한류’의 스포트라이트를 넘어서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화인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이번 순회강연을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바쁜 일정 가운데도 이 행사를 위해 일주일 이상의 시간을 할애한 안성기 씨와 이 행사를 준비하는 데 수고를 아끼지 않은 코리아소사이어티의 조윤정 씨, 프리어갤러리의 톰 빅(Tom Vick) 씨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