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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차 한-스페인 포럼

한국국제교류재단은 카사 아시아(Casa Asia)와 공동으로 지난 1월 21~22일 스페인 코르도바에서 제6차 한-스페인 포럼을 개최하였다. 이번 포럼에서는 공공 외교 및 문화, 에너지 및 과학 기술, 양성 평등, 국제 정세와 안보 등의 주제로 심도 깊은 논의가 펼쳐졌고, 지역 언론의 높은 주목을 받았다.



잔잔한 역사의 숨결이 깃든 문화의 고장,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옛 고도 코르도바에서 지난 1월 21~22일, 양일 간에 걸쳐 개최된 제6차 한-스페인 포럼. 이번 포럼은 국제사회에서 양국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는 시점에 열리는 행사인 만큼 양국 언론 및 대중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한국은 올 11월에 개최되는 G20 정상회담 개최국이며, 스페인은 2010년도 상반기 유럽연합 의장국이다. 또한 양국은 국제사회의 미들파워(Middle Power)로서 리더십을 발휘하여 세계의 번영과 안정, 그리고 화합을 이끌어낼 책임과 의무를 다할 중차대한 시점에 와 있다는 공통점을 안고 있다.

공존의 미학을 간직한 스페인의 옛 도시 코르도바
이 같은 분위기에 걸맞게 2016년 유럽문화도시로 선정된 코르도바 시는 본 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회의 장소, 운영, 인력 배치 등 전분야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안달루시아의 유력 정치인인 라파엘 블랑코 코르도바 시 부시장이 양일 간 포럼에 직접 참가하면서 완벽한 회의 진행을 위해 애써주었다. 사실 문화 간 융합을 통한 국제사회의 화합과 번영이라는 주제를 논하기에 코르도바만큼 적당한 장소는 없으리라. 711년 이슬람교도인 북아프리카 무어인들은 지브롤터 해협을 넘어 이베리아 반도를 점령했고, 이후 1492년까지 800여 년 동안 이베리아 반도를 통치했다. 코르도바는 안달루시아(스페인 남부)에 들어선 이슬람 왕국의 첫 번째 수도였고, 그 후 세비야와 그라나다가 차례로 이슬람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 따라서 코르도바를 비롯한 스페인 남부의 안달루시아 지역은 로마 문화, 기독교 문화, 이슬람 문화 그리고 유대 문화 등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며 갈등하고 또한 통합했던 진정한 다문화 공간이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Mezquita)는 그라나다의 알람브라 궁전과 함께 이 시대 최고의 유산으로 꼽힌다. 알람브라 궁전이 이슬람식 건축 양식과 상류층의 생활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면,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정교함을 자랑하는 이슬람 사원을 기본 바탕으로 기독교 교회가 시대별로 증축되어 천 년 이상의 시대별 문화양식의 변화를 한 곳에서 읽을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스페인의 기독교인들은 자신을 지배했던 타민족 이교도의 유산을 없애고 부정한 것이 아니라 이를 존중하는 가운데 바로 이어서 자신의 역사를 새로 써내려간 것이다. 공존의 미학을 배우기에 더 이상 좋은 장소는 없을 것이다.

수준 높은 발표와 활발한 토론
2010년 1월 21일에 코르도바 시청사에서 개막된 제6차 한-스페인 포럼은 공공 외교 및 문화, 에너지 및 과학 기술, 양성 평등, 국제 정세와 안보 등 네 분야에 걸쳐 심도 깊은 발표와 토론을 진행했다. 공동 주최기관인 스페인 카사 아시아(Casa Asia)의 헤수스 상스 이사장이 ‘경이롭다(favorably surprised)’고 표현했듯이, 이번 회의에선 그 어느 때보다도 한국 측 발표자의 높은 수준이 빛났다. 첫 번째 분과에선, 한국-스페인의 영상 시장에서 각각 상대국의 영화가 어떤 위상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발표에 이어, 양국 간의 이해를 증진하기 위한 공공 외교의 확대 방안에 대해 진지한 의견 교환이 펼쳐졌고, 한-스페인 포럼의 단골 메뉴인 세르반테스 문화원의 한국관 개설에 대해서도 우리측의 적극적인 요청이 이어졌다. 한국이 아시아권 최대의 스페인어 사용국임에도 스페인어 및 스페인 문화 보급의 중심지 역할을 하는 세르반테스 문화원의 개원이 늦어지고 있는 건 매우 안타까운 일이며, 올해 스페인 국왕의 방한을 계기로 문화원 개설 건이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어 오후에 열린 과학 기술 및 에너지 세션에선 한국이 아랍에미리트에서 수주한 원전 사업에 대한 스페인 측의 관심이 매우 높았으며, 특히 전 카탈루냐 자치 정부 수반인 조르디 푸졸 씨는 한국의 수주 전략을 스페인이 배워야 한다며 높은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한국과 스페인의 더욱 발전적인 미래를 위해
이튿날 열린 양성 평등 세션에서는 양성 평등을 위한 법 제정 및 정책적인 인센티브 등 법과 제도적 보장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경제적 참여와 정치적 대표성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우리 측의 발표에 스페인 측도 적극 공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여성의 참여가 앞으로 더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 양측은 합의를 이루었다.
마지막 세션은 안보 및 국제정세를 주제로 진행되었는데, G20의 의의와 개최국으로서 한국의 전략, 현 단계 한반도 정세 및 남북관계 등이 주로 논의되었고, 양국 참가자들은 경제 8위의 경제 대국이자 과학 기술 선진국이며 중남미에 여전히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스페인이 G20 서울 정상회의에 참가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특별히 이번 한-스페인 포럼은 매우 뜻 깊은 문화 행사와 함께 막을 내렸다. 스페인에서 성악가로 활동 중인 임재식 단장이 창단한 밀레니엄 합창단의 특별 공연이 있었는데 1부 스페인 가곡에 이어 2부에서는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스페인 합창단원들이 보리밭, 뱃노래, 옹헤야 등 우리 민요와 가곡을 무리 없이 소화하여 많은 찬사를 받았다. 스페인 한복판에 위치한 천년 고도 코르도바에서 한국과 스페인의 우애가 담긴 아름다운 메아리가 울려 퍼진 가운데 유년에서 소년으로 막 성장한 한-스페인 포럼이 내년을 기약하며 서서히 막을 내렸다.


한-스페인포럼 회의장 모습
연합뉴스 기자수첩 제6차 한-스페인 포럼 취재기

글. 홍덕화. 연합뉴스 한민족뉴스팀 부장



서울에서 코르도바까지
“옹헤야, 어절씨고… 잘도 한다 옹헤야…”
보리 이삭을 마당에 펴놓고 한 사람이 메기면 여러 사람이 “옹헤야”로 힘차게 받으며 도리깨질하는 원시적이고도 소박한 노동요 선율이 지난 1월 22일 밤 스페인 남부의 유서 깊은 작은 도시에 울려퍼졌다.
이날 저녁 8시 코르도바의 한 조그만 성당 무대에 오른 한복 차림의 스페인 남녀 단원 21명으로 구성된 밀레니엄합창단(단장 임재식)이 제6차 한-스페인 포럼 축하 공연을 한 시간 남짓 펼치자 신낙균 국회 여성위원장(민주당) 등 한국측 참석자들의 얼굴이 일제히 상기되기 시작했다. “어쩜 발음이 이렇게 정확할까!” “이럴수가..!” 라며 연방 쏟아져 나오는 감탄사들은 ‘날좀 보소’, ‘세뇨리따(아가씨) 울산(울산 큰애기)’ 등 감미로운 노랫소리에 파묻힐 수 밖에.
코르도바에서 열린 포럼 및 문화행사(1.21-23)에 참석한 한국 대표단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對아랍에미리트(UAE) 원전수출 성공, G20 정상회의 개최(2010.11), 김기덕 감독으로 대표되는 뛰어난 예술영화, 세르반테스 문화원 설립 캠페인 등에 힘입어 현지인들의 뜨거운 관심을 끌고 다니는 등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마음껏 만끽했다.



원전 강국으로 주목
현지 언론이 취재 경쟁을 벌일 만큼 스페인 내 영향력이 막강한 정치인인 조르디 푸졸 전 카탈루냐 자치주 대통령(지사격)은 정용헌 에너지 경제정책연구원 에너지 연구본부장의 발제 이후 “한국의 원자력 기술 발전을 축하한다.”고 운을 뗀 뒤 “원전 기술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하고 필요한 만큼 당신들에게 배워야한다.”며 우회적으로 기술 협력을 요청해 주목을 끌었다. 태양열 발전소 등 과학 기술 대국인 스페인에서 한국이‘원전 강국’대접을 받게된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타개 방안의 일환으로 2008년 가을 출범한 G20 정상회의가 3차례 열리면서 국제사회를 대표하는 기구로 급부상한 가운데 스페인이 11월 서울 회의 참석을 위해 이례적으로 한국에 협조를 요청하고 나선 것은 ‘코리아의 진면목’을 남부 유럽에 보여준 일종의 쾌거였다.
알폰소 오헤다 꼼풀루텐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G20 정상회의에 스페인이 참가한다면 유럽연합(EU) 의장국(2010년 상반기) 경험을 활용, 회원국들과 EU 간 현안 해결 과정 등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오 도메네크 말라가 대학 교수(한국학)도 “스페인은 경제나 과학•기술, 문화,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적인 대국이라는 점에서 국제 문제 해결을 모색하기 위해 탄생한 G20에 참가할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호세 에우헤니오 살라릭 외교부 아태국장은 서울 회의 참가 여부에 대해 “그 문제는 얘기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등 정부측 인사들은 대부분 함구했다. 서울 회의 참가국 규모를 놓고 국제사회에서 미묘한 신경전이 진행 중인 가운데 ‘책 잡힐 언행’을 삼가하기 위해 ‘로 키(low key)’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미겔 앙헬 모란티노스 외교협력부 장관은 연합뉴스가 “1~3차 G20 정상회의에 초청국으로 참가해 왔는데 회원국 지위를 추구할 계획이 있는가?”라고 묻자 “스페인은 경제력과 라틴 아메리카, 북아프리카와의 문화•역사적 연계 등을 볼 때 회원국이 될 자격이 있다.”고 강조하면서 “귀 대표단이 귀국 후 이를 위해 노력해 달라.”며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정치인 출신으로 화통한 모습의 모란티노스 장관은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세요. 아시아 국가들이 너무 많다고 한국이 G20 등 중요한 회의체에 끼지 말라고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스페인이 현재 유럽국가들이 다수인 G20 가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대표성 초과(over represented) ’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한편 이처럼 ‘꼬레아(한국)’의 위상에 대한 스페인 민관계 인사들의 찬사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일련의 ‘한국 띄우기’에 혹하거나 취해 있으면 안된다는 목소리도 우리 대표단내에서 적지 않았다. 유창한 영어와 스페인어 등 2개 국어로 멋지게 발제, 모국어만 주로 사용한 스페인측 인사들을 주눅들게 한 곽재성 경희대 국제대학원 교수와 임호준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스페인이 G20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해서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간과하면 안되며 우리는 비슷한 중진국끼리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전략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박 철 한국외국어대 총장도 “스페인은 중남미 21개국을 손아귀에 넣고 있는 데다 경제, 과학•기술 방면의 선진국인 만큼 한국에게 아주 중요한 나라”라고 강조했다. 스페인은 세계 8위의 경제대국에다 종합 국력의 지표인 안홀트 지수가 10위권에 랭크된 점도 중시해야 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스페인이 다국적 브랜드 조사 기관인 안홀트-GMI가 세계 50개국 중 문화, 거버넌스, 국민, 수출, 관광, 교육 등 6개 분야를 중심으로 산정한 안홀트 국가브랜드 지수(NBI)에서 2009년 스웨덴과 공동 10위에 오른 반면 한국은 30위권에 머물러 있다.
박상은 한나라당 의원은 포럼 발제에서 “자원이 부족한 한국으로서는 세계와의 네트워킹 구축, 해외시장 진흥 등을 위해서라도 국가 브랜드가 중요하다. 상품도 문화를 파는 것이라는 점에서 스페인 등 문화 선진국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다.”며 스페인과의 교류협력 및 관계 강화 필요성을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