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겐 피라미드가 없으며, 파르테논 신전도, 진시황릉도 없다. 이른바 세계를 진동케 할 만한 유산이 저들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다. 루브르 박물관이며 브리티시 뮤지엄은 ‘와 달라’ 떼쓰지 않아도 세계 각지에서 관람객이 몰려들어 비명을 지르지만, 우리는 세계를 향해 ‘와 달라’고 애원을 해도 기대치를 채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나는 우리를 위안하는 커다란 유산 두 가지를 꼽으라면 이를 꼽겠다. 두 점의 청동 반가사유상과 신라 금관이 그것이다.
엄격한 학술적 토대위에서 소개된 찬란한 유산
신라금관은 세계를 통틀어 유례가 드물 뿐만 아니라 그 제작 기법의 오묘함과 아름다움이 찬탄을 자아내기에 부족하지 않다고 평가된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우리가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세계를 향해 이를 홍보하는 창구는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멀리는 1970년대, 국립박물관이 서구 세계를 돌며 개최한 ‘한국미술 5천년 展’과 같은 자리를 빌려 신라금관이 실제 외부 세계에 소개되고 그들의 찬탄을 자아냈는가 하면, 한국 역사를 연구하는 일부 외국 연구자들을 통해 간헐적인 소개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은 허전하기 짝이 없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기획해 최근 선보인 《Gold Crowns of Silla : Treasures from a Brilliant Age》가 돋보이는 까닭은 단순히 금빛으로 휘황찬란하게 치장한 제목 때문만이 아니다. 흔히 하는 말로 우리의 시각에 의한 신라금관의 본격적인 첫 소개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짧은 지견(知見)에 의하면, 신라금관을 이처럼 상세하게 소개한 책자는 없었다. 주된 독자층으로 일반 교양인을 상정했음에도 진부한 흥미위주로 흐르지 않았으며, 어디까지나 엄밀한 학술성의 토대 위에서 신라금관의 이모저모를 소개했다.
풍부한 원색도판과 함께 ‘보는 책’
이 영문 책자가 지닌 이런 특징은 무엇보다 집필자에 대한 신뢰에서 기인할 것이다. 기본 원고는 신라금관을 포함해 한반도 고대 장신구에 대한 집요한 연구욕을 자랑하는 대전대 이한상 교수의 손끝에서 나왔다. 그의 이런 집념은 이미 《황금의 나라 신라》(김영사. 2004)를 통해 훌륭히 증명된 바 있다. 국내외를 통틀어 신라금관의 권위자로 이 교수만한 이를 찾기는 힘들다. 나아가 미국 포틀랜드 국립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는 이정희 교수의 유려한 영문 번역도 경탄할 만하다.
하지만 이번 영문판의 최대 강점은 신라 황금문화에 생소할 서구권 독자를 겨냥해 풍부한 원색 도판을 곁들여 도록처럼 편집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읽는 책’을 지양하고 ‘보는 책’을 지향했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관련 유물은 전체 모습뿐만 아니라 세부 사진을 풍부하게 넣었다. 사진은 국내 대표적인 문화유산 사진전문 작가인 오세윤씨 작품이다. 오 작가가 국내 문화유산 사진 분야에서 쌓은 이력 또한 신라황금 연구분야에서 이 교수가 누리는 위상에 견줄 만하다.
더불어 이번 책자는 금관과 관련한 신라 금속공예기술을 소개한다는 차원에서 금동관과 은관도 같이 소개했으며 황금문화에 대한 폭넓은 전망을 위해 귀걸이 같은 다른 황금유물도 개관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신라의 황금문화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쑥 솟아오른 ‘괴물’이 아님을 입증했다.
부록으로는 이 교수가 집필한 신라황금 문화에 대한 논문 외에도 주보돈 경북대 교수의 ‘마립간 시대의 전개와 신라금관’, 미국의 한국고고학 연구자인 새라 넬슨 미국 덴버대학 인류학과 교수의 ‘신라금관의 기원과 특징, 그리고 중요성’이라는 논문을 함께 실어 학술성에 대한 욕구도 해결하고자 했다.
김태식 연합뉴스 문화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