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별 닮은꼴 음식: 정(情)으로 함께 먹는 세계의 명절 음식
기록적인 폭염과 끝날 것 같지 않던 열대야 속에서 가을이라는 계절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 가을, 그 중에서도 달빛이 좋은 으뜸과도 같은 가을 저녁을 뜻하는 추석이 고맙게도 무더위를 뚫고 저희를 찾아와줬습니다. 추석은 이제 전통적인 명절에서, 긴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절호의 시기가 되어가고 있죠. 추석을 맞는 모습은 달라졌을지라도 예쁘게 빚은 송편 몇 개쯤은 집어 먹어야 추석을 제대로 보내는 것 같은 마음은 여전합니다.
조선시대 방랑시인 김삿갓도 예찬했던 우리의 송편을 이제 떡집에서 더 간편하게 사 먹는 집이 많아졌습니다. 사실 송편을 제대로 만들려면 쌀가루를 익반죽해 시루에다 솔잎을 켜켜이 넣고 쪄야 하는데 이제 이러한 수고스러움을 누가 너끈히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송편을 즐기는 방식이 변하다보니 안에 넣는 소도 지역에 따라 다르고, 송편의 종류도 다양하다는 걸 아는 분도 많지 않을 테지요.
태평양을 건너 북미의 미국, 캐나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추수감사절은 풍성한 수확을 신께 감사한다는 순수한 뜻이 이제 쇼핑과 세일의 절정과도 같은 날로 변질되었지만 풍성한 음식을 즐기는 것만큼은 변함이 없습니다. 추수감사절 음식을 말할 때 칠면조 요리를 가장 먼저 손꼽지만 그것과 곁들여 먹는 으깬 감자요리인 매시드 포테이토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껍질을 벗긴 감자를 쪄서 으깬 다음 버터, 우유, 소금 등을 넣어 만들어 서로 나눠 먹으며 수확의 기쁨을 함께했다고 하니 풍성한 먹거리로 고마움을 전하던 우리 조상들의 모습이 겹쳐집니다.
명절로 지정된 지 오래되지 않은 중국의 중추절에는 남송시대부터 전해지는 월병을 즐겨 먹습니다. 둥근 달을 상징하며 둥근 과일과 함께 달에게 먼저 바쳤다는데 오늘날에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중국 여행의 기념품으로 더 인기 있는 과자가 되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명절로 더 유명한 베트남의 추석인 쭝투에는 중국의 월병처럼 생긴 반쭝투를 먹습니다. 반쭝투는 계란이나 돼지고기로 속을 채운 것으로 가정에서 쉽게 만들지 않는 것은 요즘 우리와 비슷합니다.
주 요리보다는 후식에 가까운 이 음식들에 비해 러시아의 명절 음식은 좀 색다릅니다. 대표적인 가을 명절인 성드미트리 토요일에는 햇곡식으로 만든 보드카를 마신다고 합니다. 보드카는 러시아의 혹한을 견디기 위한 술이라고 생각했는데, 고유한 명절 음식이기도 하다니 꽤나 놀랍습니다. 그러고 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조상들은 수확과 감사를 음식으로 함께 나누었네요. 우리도 올해 추석에는 모처럼 온 가족이 송편을 만들어 먹으며 고마운 마음을 표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글 김신영
일러스트 정효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