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메뉴 바로가기본문으로 바로가기

해외 소장 한국문화재

이 글은 1998년 12월, 해외 소장 한국 문화재 조사사업을 마무리하면서 재단이 개최한 세미나에서 조사단의 일원이었던 유홍준 교수가 발표한 ‘세계에 비친 한국 문화재’라는 기사를 읽고 미국 클리브랜드 박물관의 일본·한국 미술담당 큐레이터인 M. Cunningham이 보내 오신 서한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하여 관심 있는 국내외 전문가들의 기고가 이어져 활발한 지상 토론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유홍준 교수님,
한국국제교류재단
소식지 1999년 1·2월호에서 해외소장 한국 문화재 조사사업 관련 세미나에서
발표하신 글을 읽고 교수님이 제기하신 문제에 대한 본인의 의견과 평소
한국 미술을 담당하면서 느꼈던 문제점들을 토로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 해외 소장 한국 문화재 조사사업에 참여하신
교수님과 다른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조사사업은 매우 중요하고도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도 적어도 10년에 한 번 정도는
정기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수님과 한국국제교류재단 관계자 여러분이
힘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한국 문화재의 특질과 우수성이 점차 널리
알려짐에 따라 서구에 소장되어 있는 한국 고미술품들이 새로이 발굴되고
인정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시기에 한국인들이 해외 소장 한국 문화재의 의미에 대하여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세계 각지의 유물들은
수세기를 거치면서 다양한 경로를 통해 원산지 이외의 장소로 이동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부 민족주의적 경향의 한국인들도 해외 소장
한국 문화재가 갖는 긍정적인 측면을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현재 해외에 소장되어 있는 한국 유물이 모두 도굴되거나 도난당한 물건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당수가 한국 고미술품의 매력에 심취한 외국인들이
직접 구입했거나 이들이 한국인으로부터 선물받은 경우이며, 혹은 외국에
나갈 기회가 있었던 한국의 조상들이 선물로 가져온 것입니다.
교수님의 의견 중 본인이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그 중 한 가지는 중국 문화재가 한국이나 일본의 문화재보다
우월하다고 평가하신 점입니다. 양적인 측면을 갖고 유물을 평가하는
데에도 신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유물이 양적으로 풍부하다고 해서
중국 문화재가 우수하다고 평가될 수는 없습니다. 이는 일부 박물관의
경우 일본 유물 소장품이 중국계 소장품의 수에 육박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양국의 문화를 동등하게 평가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특정 박물관의 선호도를 나타내는 것일 뿐이며, 그 선호도라는
것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하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대영박물관에
소장된 일본 유물을 연구한다고 해서 일본 문화의 전모를 이해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일본 유물에 대한 서구인들의 취향을 이해하는
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미국 박물관의 일본 소장품은 또 다른
취향을 반영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연고로 ‘외국인의 눈과 마음에
비치는 문화유물의 가치 기준’이라는 것이 앞으로 매우 흥미로운 연구과제이기도
합니다. . 교수님이 지적하셨듯이 해외에서의 한국 유물에
대한 평가는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사실입니다. 두 가지 과제가 선결되지
않고서는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은 요원하기만 합니다. 첫째, 해외 박물관의
상설전시나 기획 전시를 통하여 해외에서 한국 문화재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합니다. 둘째, 한국사, 한국 미술, 한국 문학 등 해외에서의
한국 전문가 육성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현재의 임시 국립중앙박물관은
소장품 중 1/3 혹은 1/4도 전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차라리
재단의 지원을 받아 일부 소장품을 해외 순회전에 출품시키는 편이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는 데에는 훨씬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건설중인 국립중앙박물관이 완공되고 자리잡기까지 소요될 긴 시간
동안 현 상태로 유지된다면 과거와 마찬가지로 한국 문화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는 몇 세대에 걸친 수많은 학생들과 문화재 애호가를 놓치는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교수님 글을
통해 메트로폴리탄박물관에서 출판한 「Arts of Korea」 책자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본인 역시 이 책이 어느 정도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너무 큰 기대를 걸지 않는 편이
나으리라 생각됩니다. 이 책은 부피도 클 뿐더러 가격도 비싸 많은 학생들이
구입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학 도서관들이 이 책을 구입하고, 또
동아시아 미술 분야의 개론 도서 목록에 실린다면 다행일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아시아 미술을 공부한다면
중국이 가장 선호되고 그 다음은 일본, 그리고 인도나 서남아시아 순서인
것이 현실입니다. 대학원 과정에서 한국 미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몇몇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한국 미술사에 대한 관점 역시 지도교수인 중국
미술사 전공자들의 편향된 견해에 강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해 개관된 메트로폴리탄 한국실에 전시된 회화작품을 설명하는
문구를 읽어보면 중국 회화의 영향을 강조하는 내용 일색입니다. .
교수님은 국제 미술계에서 한국 유물이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만, 한국 내에서의 위상은 어떤지 오히려
되묻고 싶습니다. 자국의 유물을 관리하는 태도에 있어 한국과 일본은
차이점을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하찮게 보이는 찻잔 하나도 소홀히
다루는 법이 없으며, 서화의 경우 일정한 기간 동안에만 일반인에게
공개하여 작품의 훼손을 방지하곤 합니다. 해외 박물관 실무자로 한국
유물을 수집하고자 할 때 자주 겪게 되는 어려움은 구입할 수 있는 작품이
매우 한정적이라는 점도 있지만 그나마 있는 작품도 보존 상태가 열악하다는
점입니다. 유물 구입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어렵지만 구입하고자
하는 한국 유물의 보존 상태가 전시하기에 부적절하고, 중국이나 일본
유물보다 뒤떨어진다고 생각하는 박물관장(혹은 후원자)을 설득하는
일은 더욱 어렵습니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 문화재의 위상을 높이고자 하는 것은 우리 두 사람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아직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음을
절감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