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시작되던 지난 9월 30일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일에 맞추어 「제4차 한·러 포럼」이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러시아 측은 로슈코프 (Aleksander Prokhorovich Losyukov) 외교부 차관을 대표로 러시아 외교아카데미 학자들을 비롯한 외교, 통상분야 전문가들이 참가하였고, 우리나라는 이인호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대표로 러시아전문가들이 참가하였다. 그동안의 한·러 포럼은 뜨거운 의견교환의 장으로 역할을 다하면서도 포럼이라는 형식이 지니는 한계도 존재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지난해 「제3차 한·러 포럼」의 긴장된 주변 분위기와는 달리 한·러간에 뚜렷한 현안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정세 속에 개최된 이번 4차 한·러 포럼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처음 패널로 참가하는 것이어서 무척 기대되고 긴장되는 포럼이었다.
문화교류에 대한 공감본회의에서는 남북문제를 비롯한 안보, 외교, 군사 등의 분야와 양국 간의 공동프로젝트인 에너지, 가스 및 철도연결 등의 문제가 논의되었으며, 나아가 사회·문화 분야의 문제들까지 폭 넓은 의견을 나누는 장이 되었다. 비록 시급한 현안은 없었지만 회의에서 다룬 거의 모든 문제들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의제들이었다. 또한, 문화분야의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었고, 이 분야에서 진행된 논의는 양국이 모두 공감하는 결론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이제까지의 양국 관계에 대한 반성과 전망을 동시에 포함하는, 앞으로 문화교류의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는 결론이었다고 생각된다.
장기적 비전과 전략 필요러시아의 대 한반도 정책이 러시아의 대외정책이라는 커다란 틀의 변화와 함께 수정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동안 양국 관계가 많은 기대 속에 급진전하다 보니 실망감이 컸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양국이 서로를 직시하지 못해왔고 최근들어 냉정하지만 우호협력의 차원에서 ‘바로보기’를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양국관계의 분위기가 이번 회의에서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었다. 따라서 신뢰와 이해의 폭을 넓힐 문화교류에 대한 상호 이해가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양국이 추진하고 있는 공동 프로젝트가 장기화, 대형화되고 있고, 이는 양국관계가 현안중심의 단기적인 차원보다는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차원의 구도 속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는 사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양국이 기본적으로는 자국의 이해관계 속에서 양국관계를 규정하려 하겠지만, 양국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장기적 비전과 전망을 추구하며 공동의 이익을 위해서 노력해야 된다는 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라는 결론이 이번 회의의 성과라고 생각된다.
이를 위해서 그간 양국 사이에 구축된 신뢰를 증진시키고 상호 이해의 폭을 확대하여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양국의 공동이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사실이 양국의 참석자들 사이에 공감되고 있어 문화교류에 서로가 동의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
지역전문가들간 네트워킹 강화이제 러시아는 우리에게 냉정하지만 우의를 가진 영향력 있는 이웃으로 자리잡고 있으며 우리도 이를 냉정히 받아들이고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시기에 러시아에 대한 이해가 깊어져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러시아에서 공부하고 러시아를 체험하며, 깊이 이해하고 있는 많은 전문가들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관련분야의 전문가들에게도 참여의 폭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고 우리 전문가들이 네트워킹을 강화하는일 또한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우리나라에 대한 이해나 신뢰회복 및 증진을 위한 러시아 측 노력이 부족했던 점을 지적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