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의 한국학 역사는 일천하다. 한국학으로 불린 것도 9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대체로 80년대 중반 이래로 이 지역의 몇몇 주요 대학에서 한국어 강좌를 해 온 것이 전부였다. 90년대에 들어서서 동남아가 ‘아세안으로 하나 된 동남아’를 지향하면서 아세안 (동남아시아 국가연합) 산하기관으로 ASEAN University Network가 설립되어 학문교류의 중추적 역할을 시작하면서 한국학이 동남아에서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
특히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3개국이 한국학 연구에 열성적이다. 태국은 일찍부터 한국을 수평적인 경쟁상대국으로 생각한 나라이고, 베트남은 Doi Moi 개혁개방 정책 이후 세계 삼류국가에서 가장 짧은 기간 내에 빈곤에서 벗어난 한국 배우기에 발벗고 나섰다. 이로 인해서 태국에는 부라파대학과 쏭클라대학에, 베트남에는 하노이대학과 호치민대학 이외의 2개 대학에 이미 한국학과가 설치되어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다.
급성장하고 있는 인도네시아에서의 한국학역대 인도네시아주재 한국대사들은 수도 자카르타 근교에 위치해 있는 국립 인도네시아대학이 한국학과를 설치하기를 고대하였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대학의 과다한 한국측 지원 요구로 구체화되지 못하다가 민형기 대사(재임 : 1995~98) 부임 초에 족자카르타 소재 국립 가쟈마다대학의 한국학 프로그램을 정부차원에서 지원하게 되었다.
이에 앞서 1995년 5월 가쟈마다대학의 Boma Wikan 부총장과 Chamamah Soeratno 문과대학장이 방한하여 주요 관계대학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을 방문하고 한국학 설치의 필요성을 확인하였다. 같은 해 8월 필자가 주관했던 ‘한국-인도네시아 교류 30년 : 회고와 전망’ 세미나를 계기로 가쟈마다대학에서 한국학이 시작되었다.
1995년 9월 신학기에 문과대학의 강의로 한국어강좌가 열렸다. 이 강좌는 주당 2시간의 교양선택과목으로, 문과대학에서는 100명, 타 단과대학에서는 60명 정도의 학생들이 수강하였다. 첫 해 강의는 현재 가쟈마다대학에서 문화인류학 박사과정에 있는 조윤미 선생이 맡았는데, 초기 수강생 중에는 한국외대에서 한국학 석사를 마치고 한국학 전임교수로 자리잡은 Suray씨가 포함되어 있었다. 1996년 9월 학기부터 한국국제협력단의 국제협력요원들이 강사로 보강되어 한국어강좌 I, II와 한국문화 강좌가 개설되었다. 이때부터 봉사단원으로 전환될 때까지 4명의 한국국제협력단 소속의 국제협력요원들(이동엽, 임정훈, 고동현, 김경우)이 2명 1개 조로 각각 2년 동안 한국학의 씨앗을 심고 싹을 틔웠다.
가쟈마다대학의 한국학은 1997년 2월 한국국제교류재단이 파견한 김긍섭 교수가 부임하면서 활기를 띠게 되었다. 김긍섭 교수가 봉직한 지난 5년 동안 총 개설강좌 수는 14과목으로 늘어나 한국어 기초과목 이외에 사회, 문화, 역사, 경제 등의 과목이 증설되었다. 지난 8월 말까지 최근 4개년 동안 14개 강좌의 총 수강생 수는 2,459명으로 강좌 당 평균 수강생이 50명을 넘어섰다. 그동안 총 11명의 한국국제협력단 봉사단원이 한국어 강사요원으로 다녀갔거나 강의 중에 있다. 가쟈마다대학에서도 1996년 10월 총장 직속기관으로 한국학센터를 설치하고 문과대학장을 역임한 Djoko Suryo 교수를 책임자로 임명하여 한국학 발전에 열의를 보이고 있다.
「한국주간」 행사, 성황리에 마쳐현재까지 한국학센터에서는 매 학기 한국-인도네시아 국제세미나를 개최해 왔다.이를 계기로 한국의 주요 인사들이 가쟈마다대학을 방문했다. 가장 최근에는 이순복 경남대 총장, 임달승 국립 강릉대 총장, 김재섭 한국대사가 다녀갔으며, 지난 2월에는 이인호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도 한국학 열기의 현장을 방문하였다. 김긍섭 교수가 부임한 이래 매년 10월 연례행사로 열리고 있는 「한국주간」이 금년에는 10월 2일부터 5일까지 연일 400명 이상을 동원한 한국영화제를 시작으로 23일과 24일 양일 간 열린 한국축제까지 약 20일의 일정으로 연장 진행되었다. 축제기간 중에 시상식을 치뤘던 「한국 관련 수필대회」에는 인도네시아 전국 250개 우수 고교학생들이 참여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정규 한국어과 내년 개설 예정국립 가쟈마다대학은 55,000명의 학생과 2,900명의 전임교수가 있는 세계적인 명문대학의 하나이다. 내년 신학기인 2003년 9월에 문과대학에 한국어과를 정식 개설할 예정이다. 이를 위한 준비로 3명의 한국학 석사학위를 소지한 전임교수를 확보하고, 석사과정 5명과 박사과정에 4명 등 총 9명의 전임교수를 한국에 파견하였다. 이 대학은 최근 한 한국기업인으로부터 한국학관을 기증받았다. 사회과학대에 건설 중인 3층, 1,050㎡ 규모의 이 건물은 (주)매직컴의 마용도 사장이 인도네시아의 한국학 발전을 위하여 쾌척한 것으로 국립 인도네시아대학에도 동일한 목적의 한국관이 이미 개관된 바 있다. 인도네시아의 한국학 열기는 이로써 더욱 뜨거워질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