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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에서 보낸 어느 멋진 하루

길을 돌아설 때마다 우리 아래로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바위를 만났고 그 바위를 딛고 올라설 때마다 서울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사람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정취로 생각하는 ‘산’이었다.

7월 중순의 어느 일요일 아침, 우리는 그날 하루를 아주 게으르게 보내고 있었다. 8월에 있을 회의에서 발표할 논문이 늦어지고 있다는 이메일 독촉을 받은 터라 그 논문을 조금씩 손질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4시가 지난 늦은 오후, 지루한 논문 작업 끝에 약간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우리는 산책을 하기로 결정했다. 서울 토박이인 아내 영희는 서울의 북서부 끝자락에 높이 솟은 인왕산의 아름다운 모습에 늘 감탄했다. 그런 산이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에서 얼마 안 되는 곳에 있는 것처럼 보였고, 아내는 정상으로 올라가고 싶어 했다. 산에 오르는 것, 등산이라 불리는 그것은 한국인들이 즐기는 여가 생활이었고, 인왕산은 그중에서도 인기 있는 장소였다. 아내는 인왕산에는 잘 표시된 등산로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아내가 옳았다. 우리는 사직공원을 지나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동네사람 몇 명만이 나와 있었던 한적한 등산로를 따라 걸으며, 사람들이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 아들에게 야구공을 던지는 아버지,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누는 가족들, 맨땅에서 크로켓과 비슷한 경기를 하고 있는 네댓 명의 할머니들은 모두 한가로운 여름날의 오후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아내와 함께 천천히 걸음을 옮겨 공원 뒤로 돌아가자, 엄청나게 높은 받침대 위에 서 있는 율곡과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의 거대한 동상을 볼 수 있었다. 동상 뒤로 인왕산이 시작되는 오르막길이 보였고, 한편에 한민족의 신화적 시조인 단군 사당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그 건물의 안을 살짝 들여다보자 실물보다 커 보이는, 턱수염이 있는 인물상이 보였다. 건물을 지은 사람의 의도는 알 수 없었지만 약간 방치된 듯한 이 건물은 작은 절과 닮았으면서도 확실히 무언가 달라 보이는 기이한 느낌을 주었다. 지나가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이 사원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공원과 사원을 지나 산길로 향했다. 이곳까지 양쪽에 보도가 있는 깔끔하게 포장된 2차선 도로가 있었다. 아내와 나는 인왕배드민턴클럽과 조선 시대의 다섯 군데 활터 중 하나였던 곳을 지나갔다. 한옥의 고즈넉한 지붕과 둥근 과녁이 멀리 아래에까지 펼쳐져 있었다. 2킬로미터쯤 더 가자 왼쪽에 등산로가 나타났다. 입구에 서 있는 관리인은 등산객들에게 여러 가지 안내를 해주고 있었다. 등산로에 대해 질문을 하자 그는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우리는 그가 알려준 등산로 중 하나를 골라 산으로 들어섰다. 길은 그늘져서 시원했고 상쾌한 산들바람은 고단했던 마음을 금세 풀어주었다. 하지만 높은 습도와 등산의 힘겨움은 온몸을 금방 땀으로 젖게 만들었다. 어쨌든 7월 중순이었고 한여름의 더위는 피할 수 없었다. 산의 경사가 심해지는 지점에서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큰 바위 면에 계단이 있는 것이 보였다. 산을 오르면서 그 길에서 가끔 몇몇 등산객들을 만났다. 그들 대부분은 배낭과 등산화, 그리고 나이가 든 몇몇은 등산 스틱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런 장비들은 일종의 취미용 유니폼처럼 보였다.
아내는 당초 가벼운 산책을 하며 길이 어디로 나 있는지 알아보려고 했었다. 이렇게 시작한 산책은 결국 산 꼭대기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산 아래부터 정상에 이르는 길 전체는 시민을 위한 공원으로 잘 보존되어 있었고, 험한 길은 바위 면에 경사진 계단을 만들어 좀 더 편안하게 지나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 등산객에게 위험한 구간에는 길을 따라 로프가 설치되어 있었다. 등산로에는 다양한 종류의 운동 기구가 설치된 곳이 두 군데 있었고 모두 잘 관리되어 있었다. 바위틈에서 물이 샘솟아 나오는 곳도 옹달샘도 있어 등산객들은 지친 몸을 잠시 쉬며 목을 축일 수 있었다. 이 샘은 약처럼 원기를 회복하게 해준다는 ‘약수’의 공급원인데, 실제로 물은 시원하고 달았으며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열심히 물병을 채우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를 만났다. 그녀는 산이 눈과 얼음으로 덮이는 겨울에도 항상 이곳에 와서 약수를 넉넉히 떠간다고 말했다.



길을 돌아설 때마다 우리 아래로 우뚝 서 있는 거대한 바위를 만났고 그 바위를 딛고 올라설 때마다 서울의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한국 사람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정취로 생각하는 ‘산’이었다. 아름다운 인왕산과 서울의 모습을 우리는 여러 각도에서 사진기에 담았다.
정상에 펼쳐진 모습이 궁금해 너무 서둘렀나 보다. 정상에 올라 앉았을 무렵 아내는 몸을 떨기 시작했다. 시원한 산들바람에도 불구하고 내 옷과 가방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 마치 비틀어 짜면 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인왕산 정상에 있는 마지막 바위 꼭대기로 오른 우리는 펼쳐진 서울의 모습과 즐거워하는 우리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그런 다음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늦은 오후 햇살 속에서 수백 마리의 잠자리들이 우리 주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먹이를 찾는 제비들도 간혹 지나갔고, 아름다운 날개를 자랑하는 나비도 보였다. 인왕산은 고유한 야생 생물이 풍부한 곳으로, 저 아래 남산 주변에서부터 멀리 지평선까지 펼쳐진, 거대한 도시로부터의 피난처다. 발 아래로 펼쳐진 도심의 풍경에서 경복궁의 우아한 선이 가장 분명하게 보였고, 그 앞으로 한국의 중요한 국가적 상징물로서 현재 재건축 중인 광화문의 임시 구조물 외곽선이 뚜렷이 보였다. 그 왼쪽으로는 숲이 우거진 북악산의 경사면 한가운데에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가 특유의 푸른 기와지붕을 얹은 모습으로 근엄하게 서 있었다. 이 아름다운 산 아래 모습은 잠시 우리의 숨을 멎게 했다. 우리는 햇살이 희미해지기 시작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땅거미가 어슴푸레 질 무렵 우리는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긴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와 약간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나는 카레라이스를, 아내는 그토록 먹고 싶어 하던 생선구이를 먹었다. 간단한 쇼핑을 하는 것으로 한여름 늦은 오후의 산책은 끝이 났다. 피로가 몰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