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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통 문화를 알리다

해외 공연을 떠날 때면 공연 준비 부족에 대한 아쉬움과 새로운 곳에 대한 기대가 늘 교차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해 우리 전통 춤을 보여준다는 설렘, 좋은 공연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 그리고 힘들게 준비한 작품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 등 마치 미열과도 같은 불안감을 가슴속에 담고 비행기에 올랐다. 여러가지 걱정이 앞서긴 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문명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는 호주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에 기대감이 높았고, 이번 대양주 순회공연도 무사히 마칠 것 같은 여유와 편안함이 들기도 했다.

29일 시드니에 도착. 모던하면서 아담한 공연 극장(Canberra Theatre Playhouse)에 들어서자 초록색 의자들이 먼저 우리들을 맞았다. 예쁘고 모던한 극장의 모습은 장거리 여행에 지친 단원들의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는 듯했다. 리허설을 할 수 없는 점은 안타까웠지만 앞으로 있을 공연에 대한 기대감과 열정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극장을 나섰다.
그날 저녁 대사관저에서 마련한 만찬에 초대된 단원들은 대사님을 비롯한 대사관 식구들의 친절과 배려가 듬뿍 담긴 만찬을 즐겼다. 우리는 우연히 대사관저 한쪽에서 줄이 끊어진 가야금을 발견했고, 만찬에 대한 답례로 예쁘게 고쳐주기로 마음먹었다. 다음날 가야금은 대한민국의 우아한 전통 악기로 손질되어 대사관저의 본래 자리로 돌아갔다.
드디어 8월 30일, 캔버라에서 공연을 펼치는 날이 되었다. 전날 무대 점검, 조명 시설 설치 등을 할 수 없었기에 무대는 여러 설치 작업과 점검으로 아침부터 부산했다. 공연을 위한 무대를 만드는 데 8시간이 소요되었고 이는 서울에서는 겪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18시간으로도 부족한 일을 서울에서부터 극장 담당자와 꾸준한 연락을 취하며 빠르게 준비했고, 무대감독, 조명감독을 비롯한 전 스태프가 합심한 결과 성공적으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오후 5시가 되어서야 무대에 설 수 있었던 무용수들은 많이 속상했을 것이다. 별도의 연습실도 없었던 환경 때문에 무용수들은 분장실과 복도, 심지어 로비에서도 작품별 연습을 했다. 14시간이 걸린 장시간 여행으로 굳고 피곤한 몸이 제 컨디션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해외 공연 경험과 평소의 연습으로 단련된 단원들은 단 한 번의 리허설만을 가지고 7시 본 공연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첫 무대인 ‘박접무’가 공연되자 우아하고 화려한 우리의 전통 의상과 무용수들의 중후한 몸짓에 관객은 숨을 죽였다. 이어진 ‘신살풀이’는 우리 전통 음악과 서양 음악이 혼합된 퓨전 음악에 진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우리 전통 춤이 어우러져 낯선 관객이 마음의 문을 열고 공감하게 만들었다. 가야금 연주가 펼쳐지자 관객은 신비한 우리의 선율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하늘씨’에서는 전통의 현대화에 내심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이내믹한 ‘설장고’에 이르자 찬사와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다음 순서를 위해 연주자들이 무대로 등장하자 관객은 호기심과 기대에 찬 시선으로 무대를 응시했다. ‘부채춤’의 화사함에 그들은 마음을 활짝 열고 풍부한 감성으로 박수와 탄성을 보냈다. ‘살풀이’은 우리의 전통춤 중에서도 정중동(靜中動)의 의미를 가장 잘 전달한 전통미의 정수다. 살풀이가 공연되는 동안 의자에서 등을 떼고 마치 무대로 빨려들 듯 집중하는 관객의 보습을 보니 이미 모두가 공연과 하나가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날 살풀이는 조명과 음악, 의상과 춤이 완벽히 조화를 이룬 이번 공연의 백미였다.
‘춤 신명’은 관객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마지막을 장식했다. 어두운 무대에서 들려오는 한국의 타악기 소리. 관객들은 분명 이 소리를 한국의 심장 소리, 발소리로 들었을 것이다. 아리랑 선율에 덧붙여져 하늘을 가르는 쇳소리는 한국의 뿌리와 오늘의 생동감을 표현한 것이었다.
마지막 작품이 끝나자 관객은 공연에서 얻은 감동을 아낌없는 박수로 화답했다. 커튼콜 내내 관객의 환한 미소와 즐거워하는 모습에 가벼운 흥분마저 느꼈다. 이로써 떠나올 때 느꼈던 공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압박감을 벗어버릴 수 있었고, 그동안 공연 준비 과정에서 힘들었던 순간들이 가슴 벅찬 보람으로 다가왔다.
대사님 이하 대사관 직원들의 상기된 얼굴과 캔버라 ACT 주정부 다문화부 관계자들과의 대화를 들으며 이번 공연이 매우 성공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은 ACT 주정부 주관의 멀티컬처럴 서미트 행사의 일환으로 진행된 만큼 ACT 주정부에서 공연 극장을 제공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또한 존 하그리브스 ACT 주정부 다문화장관을 비롯해 짐 머피 연방 재정부 차관보, 데이비드 팔머 호한재단 이사장 등 정부 고위 인사, 20여 개국 공관장 등 외교단 인사. 짐 폭스 ANU 한국학연구소장 등 학계•문화계 인사와 멀티컬처럴 서미트 행사 참가자 등 많은 인사들이 관람했다. 이와 같이 외국의 주요 오피니언 그룹들에게 우리 전통 춤과 음악 등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보여줌으로써, 향후 우리 민족 고유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널리 제대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빠듯한 일정 탓에 저녁 늦게 호텔로 돌아온 일행은 제대로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9월 1일 멜버른 공연을 위해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으로 향했다.
멜버른의 공연 장소는 캔버라와는 달리 공연 시설이 많이 취약했다. 하지만 경험이 많은 스태프들은 순발력과 노련함으로 9월 1일 공연 당일 무대 시설을 현명하게 보완했다. 이들의 노력은 최상의 공연을 가능하게 하는 자양분이었다.
멜버른 공연에서 애초 예상한 주요 관객층은 한국 교민이었다. 하지만 로버트 스미스 빅토리아 주 상원의장, 아이딘 누르한 주 멜버른 터키 총영사 등 주정부 및 외교단 인사들도 많이 관람했다. 특히 이들은 이번 공연에 대해 많은 감동을 받았음을 이야기했고, 내년 빅토리아 주 정부 행사 때 초청할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번 대양주 순회공연의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공연을 지원해준 한국국제교류재단과 주호주 한국 대사관 관계자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