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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쇳대는 우리의 얼과 소통한다”

<한국의 열쇠와 자물쇠> 특별 전시회가 도쿄 고마바(駒場)에 있는 일본민예관에서 9월 9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개최된다. 서울 동숭동에 위치한 쇳대박물관 소장품 중에서 조선시대 열쇠와 자물쇠 150점, 빗장 30점, 열쇠패(키홀더) 30점이 일본에 처음으로 선보이게 된 것이다.
이번 전시회는 한국의 열쇠와 자물쇠를 통하여 한국 전통문화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도 재정적으로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특히 한국공예품에 특별한 애정이 있던 야나기 무네요시(柳 宗悅)의 정신이 담긴 일본민예관의 초빙으로 개최되는 점에서, 한일 간 문화교류에 의미 있는 기획 전시로 평가받았다.
일본민예관을 방문한 9월 11일 오후, 필자는 이번 전시회 준비를 위해 일본을 방문 중인 쇳대박물관 최홍규 관장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 사립 박물관계의 유명 인사인 최홍규 관장은 지난 30여 년 동안 철물점을 운영하면서 4,000점이 넘는 한국의 전통 자물쇠, 열쇠패, 빗장 등과 전 세계의 열쇠와 관련된 물품을 수집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2003년도부터 열쇠와 자물쇠를 테마로 한 박물관을 개관하여 운영해왔다.
일본의 전통 목조 가옥풍으로 지은 민예관 2충의 전시 공간에 들어서자, 약간 어둡게 연출된 조명 속에서 쇳대박물관 유물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이번에 소개된 한국의 전통 열쇠와 자물쇠, 빗장, 열쇠패에 대해 최홍규 관장의 설명과 안내 자료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자 한다.



2008년 열쇠와 자물쇠
열쇠는 단순히 잠그는 기능에 주목하여 사용되어온 생활용품이다. 하지만 전통적•실용적인 기능보다도 ‘타인의 물건에 손대지 마라’는 경고의 의미를 지닌 상징적인 개념이 더욱 강했다. 때문에 실제 보안 기능이 그다지 엄중하지는 않다.
한국의 열쇠는 화려함이 절제된 채 비교적 단순하고 도식화된 모습으로 표현되어왔으며 불필요한 설명이나 기교를 배제하였다. 또한 자물쇠는 수복강령(壽福康寧), 부귀다남(富貴多男) 등 길조의 글자무늬나 인의예지(仁義禮智) 등 유교적 덕목을 새긴 글자무늬 또는 이러한 것을 상징하는 각종 동식물의 모양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장식의 목적보다도 사용자의 일상적인 소원과 희망을 대변하는 주술적인 목적에 기인한 것이다.
이와 같이 열쇠는 생활 속에 깊게 연관되어 형성된 실용적인 용도의 제작물이었으나, 사용하는 사람들의 요구와 소망을 모양이나 형태로 표현하면서 당시의 문화적 특성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빗장
빗장은 전통 한국 가옥의 문 안쪽에 달린 열쇠로서 구체적으로는 양쪽 대문을 잠글 수 있도록 만들어진 나무 대를 의미한다. 빗장은 대문의 크기와 장소, 지역에 따라서 그 모양과 크기가 다르며 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나무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빗장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거는 부분이 필요한데 이것을 ‘둔테’라고 한다. 약 30센티미터 정도의 나무판을 이용하여 만드는 둔테는 대문에 부착되는 면의 중간 부분에, 빗장이 걸리는 크기로 구멍을 파서 끼운다. 그리고 앞쪽에는 모양을 새기거나 마무리하여 장식한다.
둔테는 길조 동물의 형상으로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거북이 형태를 주로 사용하였다. 거북은 용, 봉황, 기린과 함께 ‘사령’이라고 불리며 3,000년을 산다고 하여 예로부터 수호와 장생의 동물로 알려져 왔다. 둥글고 딱딱한 갑장은 하늘을 나타내며, 그 표면은 별을 상징한다고 믿었다. 평평한 배는 땅을 상징한다. 또한 거북의 몸은 천지음양의 힘을 표현한다고 하였으며 수명과 우주의 상징으로도 여겨져 왔다.
이외에도 거북의 머리는 남성의 생식기를 닮았다고 하여 생명과 다산, 번창과 기원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한번 물면 놓치지 않는 습성에서 빗장을 닫고 지킨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열쇠패
열쇠패는 일반적으로 여러 개의 열쇠를 연결하기 위하여 사용하던 간단한 고리를 뜻한다. 또 목각이나 녹각의 고리 이외에 엽전, 별전, 장식, 노리개 등의 장식품으로서 일종의 화려한 감상용품이기도 하였다. 열쇠패는 혼례용품으로 사용되었는데 시집을 가는 딸을 위하여 어머니가 만들어주기도 하였다.
열쇠패를 이렇게 화려하게 장식한 이유는, 그 안에 여러 가지 행복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열쇠는 귀중한 물건을 잠가 보관하고, 필요할때 꺼내서 사용할 수 있으며, 열쇠를 사용함으로써 삶의 질도 향상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열쇠는 집안의 안전과 행복을 늘린다는 복(福)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열쇠는 집안의 경제 활동과 도덕, 윤리 생활을 맡고 있는 여자가 관리함으로써 집안에 들어온 오복을 보호하도록 했다.

공예품에는 그것을 향유하는 사회의 소박하고 현실적인 요구가 담겨 있다. 이런 공예품 중에서 열쇠를 걸어 지킨다는 자물쇠, 빗장, 열쇠패에 포함된 의미를 알아보는 것은, 한국전통 사회에서 추구해온 가치와 과거의 풍물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한국의 열쇠와 자물쇠> 특별전을 관람하면서 일상생활의 작은 부분까지도 아름다움과 여유로 승화시키고자 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실용성을 넘어 조형적 측면에서도 한국 전통미술의 주요 덕목을 두루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전시 기간에 많은 일본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