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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박 6일’간 펼쳐진 세계 음악의 난장

우즈베키스탄의 고도(古都) 사마르칸트에서 열리는 국제 음악제 ‘샤르크 타로날라리(동방의 선율)’는 우즈베키스탄 정부 주최로 격년마다 펼쳐지는 대규모 전통 음악 축제다. 40 여 개국이 참가한 이번 축제에 한국의 월드 뮤직 그룹 ‘바이날로그(Vinalog)’가 한국 대표로 초대받아 참가했다.

올해로 7회째를 맞은 이 행사는 동아시아에서 열리는 몇 안되는 국제 규모의 전통 음악 및 월드 뮤직 축제 중 하나로 이미 안숙선 명창 등 한국을 대표하는 음악인들이 참가한 바 있다. 수세기 전 문명의 교차로였던 사마르칸트에서 음악을 통해 문화의 교차로를 만들어가고 있는 월드 뮤직 그룹 바이날로그가 공연한다는 것은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사마르칸트행 열차는 세계의 음악을 싣고
개최지인 사마르칸트로 가는 길은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까지 8시간을 비행한 후 또다시 기차로 4시간을 이 동해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하지만 피곤하리라 예상했던 이 여정은 걱정과 달리 뜻밖에 큰 즐거움을 선사해주었다. 열차 안에는 우즈베키스탄, 몽고, 한국,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등에서 온 음악인들이 동승하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갔을까…. 우즈베키스탄 쪽 좌석에서 누군가 구성진 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자연스레 연주와 춤이 이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몽고와 말레이시아의 뮤지션들도 가세해 순식간에 세계 음악의 난장이 펼쳐졌다. 중앙아시아의 벌판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는 1시간 이상 노래와 춤이 이어졌고, 우리는 어느새 사마르칸트에 도착해 있었다. 게다가 흥에 겨워 노느라 출출해진 여행자의 속내를 아는지 기차역에는 주최 측이 마련한 전통 빵과 환영 공연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샤르크 타로날라리’는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을 비롯한 각계 주요 인사들이 참석한 개막식을 시작으로 경연 방식의 가창대회, 자유 공연, 전통음악 관련 학술행사, 폐막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학 건물로 쓰였던 사마르칸트의 유적지를 무대로 각국의 대표 팀들이 자국 전통 음악을 선보이는 이 축제는 참가 팀 대다수가 퓨전보다는 순수 전통음악을 하는 팀들이고 올해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동서양 음악이 혼합된 퓨전 음악을 하는 바이날로그로서는 현지 관객들과 관계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
본 공연이 시작되고 드디어 한국의 순서. 기타, 베이스, 키보드, 드럼 등 전자 사운드와 한국의 대금, 소금, 태평소, 장구가 어우러지고, 여기에 이번 공연을 위해 준비한 객원 보컬의 판소리 심청가의 한 대목이 더해지자 난생처음 듣는 묘한 한국 음악에 순간 관객들도 긴장하는 듯했다. 하지만 독특하면서도 흥겨운 음악을 선보인 바이날로그의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열렬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공연 후 현지 음향 스태프들도 공연 팀에게 CD를 요청할 정도였다.
사실 공연 외에도 한국 팀은 가는 곳마다 환대를 받았다. 우즈베키스탄에 고려인들이 많이 살고 있기 때문일까? 거리에서 만난 우즈베키스탄 사람은 유창한 한국 말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를 도와준 자원 봉사자들은 한국 드라마와 가수에 대해 얘기하며 한국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들 중에는 일을 하거나 친지를 만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본 사람들도 많다고 했다. 물론, 교민들은 한국 팀의 공연을 보기 위해 가족과 함께 찾아와 함께 사진을 찍으며 우리 팀을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세계 각지에 있는 교민들은 항상 우리에게 큰 힘을 준다.



사마르칸트를 울린 세계 음악의 잼 콘서트
이번 축제에는 공식 프로그램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진짜 축제는 축제가 끝난 후 시작되었다. 공식 행사가 끝나고 저녁 식사를 마친 각국의 음악인들은 호텔 로비밖에 마련된 널찍한 평상에 저마다 자리를 잡았다. 낮 공연의 여운 덕분인지 본 공연만으로는 성이 가시지 않은 탓인지 밤이 익어갈 때쯤부터는 너 나 할 것 없이 자국의 전통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와 춤을 즐기기 시작했다. 여러 나라의 음악인들이 한 공간에 있다 보니 몽고의 가수가 인도 연주팀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하는 등 순식간에 수많은 합동 공연이 펼쳐졌다. 한국 팀의 객원 보컬로 참가한 박혜련 양도 인도 팀에 우리 장단을 가르치며 함께 즉흥 공연을 펼쳐 좌중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 비공식 공연장은 세계의 음악인들이 서로의 음악을 선보이고 이름과 연락처를 교환하는 자연스러운 네트워킹의 장이 되었다.
바이날로그의 공연이 있던 날 밤에는, 이스라엘과 이란, 인도의 팀들이 한국 공연 팀을 찾아 음악이 신선하고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서로 좋아하는 음악을 연주하며 담소를 나누기도 했다.
사마르칸트의 청명한 가을 밤하늘 아래 달빛을 받으며 새벽 3~4시까지 이어진 이 세계 음악의 잼 콘서트는 주최 측이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축제의 참 맛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축제에서 정해진 공연장과 만남의 시간 외에 이렇게 참가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화합의 공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타슈켄트로 돌아가는 기차 안은 첫날 사마르칸트행과 달리 다소 차분한 분위기였다. 다들 창밖을 보거나 잠을 청하는 모습이, 아마도 5박 6일간 낮과 밤의 이중 축제를 마친 후 지쳐버렸거나 벌써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에 잠긴 듯했다. 평소 혈기를 주체 못할 만큼 활기찬 바이날로그 멤버들도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사실 우리 팀의 속사정은 따로 있었는데, 우즈베키스탄의 명물 멜론을 과다하게 먹은 탓인지 물갈이를 한 탓인지 모두들 돌아가며 심한 복통을 앓았고 일부는 장염에 걸린 채 무리해 공연한 탓이었다.
‘샤르크 타로날라리’는 새로운 음악, 새로운 세계와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앞으로도 국내외에 한국의 전통 음악과 한국 젊은이들이 써가는 새로운 우리 음악을 선보이는 자리가 더욱 많아지기를 바란다. 음악인들의 부단한 노력과 함께, 이렇게 우리 음악을 선보이고 다른 나라 음악인들과 교류하는 시간이 쌓여간다면 한국의 음악이 ‘동양의 신기한 음악’이 아닌 세계인의 마음과 박수를 얻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