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교육, 세계의 가슴이 노래하는 날을 위해
뜻있겠다 싶어서였을 뿐, 보수와는 무관하게 나선 일이 있었다. 하지만 본뜻이 왜곡되고 수고롭기만 했을 때 입에서 밥과 떡이란 단어가 절로 튀어나왔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주 좋은 밥과 떡이 나왔다. 정신을 배부르게 한 이어령 선생의 인문학 강의에 잇닿게 됐던 것이다. 내년 팔순을 은퇴 시점으로 잡은 선생이 50년 넘게 연구해온 인문학을 총정리 해 동영상 기록으로 남기는 자리였다. 요리강좌를 듣자고 꿰던 지인이 강의에 홀딱 빠진 내게 한마디 했다. “ 이왕이면 실용적인 걸 배워야지, 웬 뜬 구름 잡는 얘기야. 밥이 나와, 떡이 나와. ”
이번 포럼에서도 ‘ 밥’ 과의 연관을 뗄 수 없었다. 우선 조찬 포럼이니만큼 진짜 밥이 나왔던 건 물론이다. 아담 포크 미국 윌리엄스 칼리지 총장의 강연은 또 다른 밥이었다. 대학 현황을 소개하면서 인문학적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정신을 배부르게 했다. 또 하나, 더불어 대두된 취업이라는 밥의 문제를 빼놓을 수 없겠다. 각자 삶에서 어느 정도 경륜이 쌓인 이날의 강연자요, 청중들이었다. 그만큼 젊은이의 미래, 곧 현실과 이상 간 문제 고민 및 방향 모색을 사회적 책임이자 사명으로 느끼고들 있을 터였다.
동부 매사추세츠에 위치한 윌리엄스는 다양한 인문학 전공분야로 명성이 자자한 명문대학. 포크 총장은
“ 세계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인문학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 ” 고 운을 뗐다. 그는 “ 기술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기술이 인문학과 결합했을 때라야 우리 가슴을 노래하게 할 수 있다. ” 는 스티브 잡스
의 말을 인용하면서 ‘ 인문학 교육이란 취업의 준비가 아니라, 보다 풍성하고 효과적인 삶의 준비’ 란
점을 강조했다. 논리적· 비평적 사고, 설득적인 쓰기와 말하기, 창의적 문제 해결, 예술을 깊이
느끼며, 도덕· 윤리적 직관에 이끌리고, 자신과 자신의 문화뿐 아니라 다른 이들 및 그 다양한
문화도 이해 가능한 삶이다.
포크 총장은 인문학에 자연과학이나 수학은 포함되지 않는다든가,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문학은 기술에 대한 폭넓은 이해로 변화에 창조적인
대응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는 “ 빠르게 변화하는 불확실성의 현실에서 직장
등 안정적인 것을 준비하는 교육을 원할지 모르나, 이제 세상은 그보다 더한
능력의 차세대를 필요로 한다. ” 면서 ‘ 인생의 모든 도전과 기회에
대한 준비를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인문학’ 임을 확신했다. 그리고
‘ 당장의 관심사가 아닌,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교육자나 정책입안자들이
최선을 다할 때 잡스의 말대로 세계의 가슴은 노래할 수 있을 것’
이라 결론지었다.
피할 수 없는 한국 대학의 과제, 취업
강연 후 이어진 질문에서도 한국 대학의 현실적 문제는 졸업 후 취업임이 들먹여졌다. 결국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인문학과 밥과의 관계렸다. 며칠 전 드디어 6개월에 걸친 이어령 인문학 강의가 마무리된 날, 선생께서 점심을 사주시는 자리에서 나 역시도 밥 얘기를 꺼낸 바 있다. “ ‘ 그게 밥 먹여줘?’ 라고 물을 때, ‘ 밥은 먹여준다’ 는 답이 가장 문제다, 그것이 바로 덫이라고 하셨던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 자리가 자리인 만큼 그간 받은 많은 가르침 중에서도 복습 겸 감사의 소재로 밥 이상이 없을 듯해서였다. 선생께서 밥과 함께 역설하셨던 내용이 포크 총장의 강연과 맥을 같이하며 떠오른다.
“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게 하고, 숨은 것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 인문학의 창조적 상상력이다. 그 상상력이 인류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곳으로 가게 한다. 그때 손을 잡고 함께 가는 자들이 인문학자다. 학교에서 과학을 해도, 가게에서 장사를 해도 인문학적 접근을 할 수 있다. 그러면 교환, 소유 등의 모든 가치가 생명가치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다. 다른 건 다 수단이다. 이제부터 수단으로 살지 말고 목적으로 살라. 그게 인문학이고, 그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날개가 창조력이라는 창조의 날개다. ”
성진선 여성가족부 자문위원 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