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할 수 있다!” “너는 할 수 있다!” 12월 20일 충남 천안시에 자리잡은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 대강당. '제3차 KF 희망포럼 - 다문화 청소년 글로벌 리더십 캠프'가 열리는 이곳에 들어서니 열기가 후끈하다. 청소년 60여 명이 조를 짜서 테이블마다 둘러 앉아 있는데, 조별로 환한 표정의 학생들이 왁자지껄 대화를 나누고 있고, 멘토와 스태프들이 자유롭게 오가는 분위기는 여느 강연장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위촉을 받아 2박 3일간의 캠프 진행 책임을 맡은 김남숙 숭실대학교 지방발전교육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들을 위로하거나 적응을 돕는 데 그칠 게 아니라 미래 우리 사회의 국제전문가로 키워내는 밀알을 뿌리는 것이 이 캠프의 목적”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그 때문인지 행사도 여느 다문화 어린이 캠프와는 달리 체육대회나 문화체험 놀이 위주가 아니라 리더십 계발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짜여져있다. 각 시도 교육청에 의뢰해 전국의 학교에서 추천을 받아 참여한 66명의 중학생 중 조묘정(경기도 가평 설악중 1), 서원영(대구 송현여중 1) 학생과 김병수(서울대 행정대학원· 32) 멘토를 만나 캠프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참여동기와 소감에 대해
(이하 조): “담임선생님이 권했어요. 우리 학교엔 다문화 가정 학생들이 많아 모두 15명이 함께 버스를 타고 왔어요.”
(김 선임연구원은 ‘다문화’란 표현을 절제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들은 스스럼 없이 ‘다문화’란 말을 썼다.)
서원영(이하 서): “학교 게시물을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 신청했는데 교감선생님이 수련원까지 태워다 주셨어요.”
김병수(이하 김): “지난 7월에 학교 지방자치연구회의 기영화 교수 소개로 처음 참여했어요. 학생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이번에도 참가했죠.”
“작년 여름에 다문화 어린이 캠프를 갔을 때는 레크리에이션 위주였는데 여긴 강의와 조별 활동 중심이어서 색달라요. 시설이랑 먹는 것도 좋고요.”(서)
“성격이 소심한데다 이런 캠프는 처음이어서 조금 겁먹었는데 다른 학생들이랑 공통점이 있어서인지 빨리 친해졌어요. 생각보다 재미있어요.”(조)
“어제 저녁엔 새벽 4시까지 이야기하고 논 학생들도 있대요. 프로그램보다는 자기들끼리 대화를 통해 얻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멘토들은 야단치며 단체생활을 지도하기보다는 잘 했다고 칭찬을 해서 기를 돋아주는 역할을 하죠.”(김)
참가 학생들끼리는 처음 봤을 텐데 무슨 이야기가 그리 많을지 궁금했다.
“조별 장기자랑이 있거든요. 뭘 할지도 이야기하고…. 우리 조는 처음엔 개그를 하려고 했는데 그건 각본 같은 걸 짜야 하니까 어렵고요. 대신 걸그룹 춤을 추기로 했는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그것도 연습해야 하는데.”(조)
“여자중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남학생들하고 자꾸 싸움을 하게 되네요. 별 것도 아닌데 다른 여자애들을 대신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서)
얌전한 외모의 서원영 학생은 뜻밖에도 태권도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장래 희망을 물어봤다.
“경찰이 되고 싶어요. 나쁜 사람들을 잡는 것이 사회에 도움이 될 것 같고, 엄마도 좋다고 했어요. 그래서 동생이랑 함께 태권도를 배워요.”(서)
“요리사가 꿈이에요. 엄마아빠가 맞벌이라서 동생 세 명을 제가 돌보느라 밥도 해주고 그러는데 재미가 있어요.”(조)
사회의 인적 자원이 되기 위해
두 학생 모두 어머니가 일본인이었다. 조묘정 학생은 5남매 중 둘째, 서원영 학생은 맏이로 남동생이 있는데 학교 성적은 모두 중간 정도라고 했다. 다문화 가정 출신이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는지 물었더니 오히려 장점이 많다고 얘기한다.
“우리 학교엔 다문화 가정 출신이 많아서 반장도 하고 그래요. 차별 같은 건 못 느끼는데 수업 중에 일본이 나쁜 짓 한 이야기가 나오면 곤란하긴 하죠. 그래도 선생님들이 조심해서 나쁜 이야기는 안 하시거든요.”(조)
“어려운 건 없어요. 오히려 2개 국어를 할 수 있어서 좋은 점이 있어요.”(서)
“아니, 다문화 가정이라 해서 다들 집에선 외국어를 쓴다고 생각하는 건 오해예요. 전 일본의 외가에 가 본 적이 있지만 아주 어렸을 때였기 때문에 기억도 안 나고 일본말도 못해요.”(조)
성적을 고민하는 등 보통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이들은 캠프를 통해 무엇을 얻어갈까.
“처지가 비슷한 다른 다문화 가정 학생들과 만나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용기와 꿈을 얻었어요.”(서)
“친구들과 사귈 기회가 많아 좋아요.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이야기도 나누고요.”(조)
이들은 이런 캠프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런 캠프라면 자기 동생들도 보내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김병수 멘토에 따르면 캠프에 참여했던 학생들은 이후에도 자기들끼리 서로 연락을 하고 지내며 그 중엔 고민을 상담해 오는 학생들도 있단다.
“캠프 참가 학생들은 아무래도 학교 추천을 받아온 학생들이니까 적극적이기도 하고 학교생활에 비교적 잘 적응한 학생들이어서 서로 통하는 점이 많은가 봐요. 그래도 성적 고민이 많은지 지난 여름 맡았던 학생 7명 중 4명이 찾아와 서울대를 구경 시켜주기도 했죠.”(김)
다문화 가정 출신임을 강점으로 삼으려는 밝은 표정의 학생들, 이들을 돕는데 보람을 느끼며 앞으로도 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멘토들이 있는 한 다문화 가정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인적 자원이 되리라는 희망이 생겼다. 아울러 정부와 사회가 더 자주, 보다 충실한 다문화 교육기회를 제공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