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완성도와 그 내용이 핵심이다. 완성도라면 재능과 노력으로 누구나 기대해볼 수 있는 일차적인 문제이나 내용-컨텐츠-다시 말해서 본질적 가치는 다른 문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정체성으로 표현된다. 이것이 화음쳄버가 음악을 연주력만이 아닌 예술적 관점에서 보려는 이유이고 그래서 시작한 것이 화음프로젝트이다.
유럽투어의 외교적, 예술적 성과
개인이 아닌 한 나라의 연주단체가 해외투어를 다니는 데는 여러 의미가 있을 수 있다. 그것이 정부기관의 파견 형식일 때는 더욱 분명해진다. 문화의 핵심인 예술이 국제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생각해 본다면 문화외교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고 하겠다.
화음쳄버오케스트라가 이번 유럽 6개국 순회연주에 참여하게 된 이유와 과정은 한국의 문화외교정책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곧 한국 문화예술계의 발전된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엔 문화를 이야기 할 때 항상 동양과 서양이란 프레임안에서 생각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21세기 이후엔 그 프레임을 깨지 않고는 동양도 서양도 더 이상 새로운 세계, 발전된 세계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누구나 잘 알고 있다. 실용이 난무하는 시대에 역설적으로 예술적 가치만이 문화와 문화사이의 이해관계를 넘어 그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음악, 다시 말하면 창작음악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물음은 한국 혹은 아시아만이 아니라 세계의 공통된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화음프로젝트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책임감과 확신을 갖고 십여 년 전부터 시작하였다. 그런 점에서 이번 화음쳄버의 유럽투어는 일차적 목표인 외교적 성과만큼 예술적 성과에도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화음프로젝트를 선보이고 가능성과 방향성을 확인하는, 그리고 화음쳄버의 창단 목적과 취지를 실천하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현장음악을 통한 소통
화음쳄버는 96년 창단할 때부터 국제무대를 목표로 했었다. 그래서 처음엔 인프라가 풍부한 유럽 중요 도시를 무대로 시작하려고 계획을 하기도 했었으나 결국 가장 중요한 정체성을 만들기 위해선 상대적으로 척박하더라도 하지만 미래가 있는 한국의 토양을 선택한 것이었다. 소나무가 쭉쭉 자라지는 못하더라도 단단하고 굴곡이 멋있고 개성 있는, 많은 세월이 필요한 작품의 악단을 만들고 싶어서였다.
세계 어디를 가도 비슷한 프로그램이 연주되고 있는 현실에서 단순히 베토벤과 브람스나 차이코프스키를 잘 연주하는 악단으로 수많은 찬사를 받는다 하여도 결국 많은 연주들 중의 하나밖엔 되지 않는다. 잘해봐야 최고란 수식이 따를 뿐이다. 그것은 진정한 예술의 모습이 아니다. 과거 서양 중심의 틀에서가 아닌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진정한 예술가적인 악단을 꿈꾸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관심과 이상을 실천한다는 뜻에서 매우 실험적인, 그래서 위험하기도 하고 도전적이기도 하지만 인맥과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음악과 인격적인 관계만으로 유지되고 있는 것도 미래를 위한 준비라고 하겠다.
화음쳄버에게 이번 투어가 특히 소중했던 것은 여섯 번의 연주를 통하여 연주력 향상에 대한 구체적 대안을 찾았고, 화음프로젝트, 현지 민요 메들리를 포함한 연주 프로그램으로 정체성과 현지 청중들과의 소통이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 중요한 성과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매회 연주마다 녹음하여 이동 중에나 호텔에서 휴식 중 모든 멤버들이 모니터링하며 다음 연주 리허설 때 끊임없이 개선하려고 노력했고 마지막 연주를 마치고도 녹음을 들으며 토론을 하였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것들을 경험하였다. 이런 경험들은 서울에서 보통 한두번 연주하고 마치는 시스템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그리고 현장음악-화음프로젝트는 창작음악, 현대음악이란 용어 대신 ‘현장음악’이란 용어를 쓴다-이란 화음프로젝트의 취지가 예상했던 대로 외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수확이다. 그것은 다음 달 화음프로젝트 Op.110의 연주를 앞두고 있고 늦가을엔 재연 프로그램인 화음프로젝트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또한 화음프로젝트 인터내셔널을 계획하고 있는 화음쳄버에겐 든든한 배경이 될 것이다.
6개의 다른 나라를 순회하며 자연스럽게 함께 작업하게 된 현지의 관계자들과 리셉션에서 만난 많은 초청 인사들과의 만남은 분명 또 하나의 중요한 문화외교였다. 멤버들 개개인의 교양이 요구되는, 그래서 돋보이는 자리였다.
이번 투어를 짧은 기간에 준비했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한국국제교류재단과의 이심전심은 오랜 동지처럼 느껴지는 따뜻함이 있었다. 짧지 않은 시간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오르는 심정으로 일을 해왔던 나에게는 위로처럼 느껴졌다. 이 역시 매우 값지고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끝으로 이번 투어를 통하여 화음쳄버가 내적 성장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고 이런 기회를 준 한국국제교류재단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박상연 화음쳄버오케스트라&화음프로젝트 대표, 음악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