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에 관련된 기사를 써오면서 독자들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몇 번 있다.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에선 일찍이 다문화주의의 실패를 선언했는데 왜 자꾸 우리나라 언론과 정부는 허울 좋은 다문화만 외치냐는 얘기였다.
우리나라는 다문화란 말을 유럽과는 다른 용도로 쓰고 있다. 다문화주의가 무엇이며 우리사회가 이를 공식적으로 택할 것인지를 논의하기도 전에 정부는 다문화란 말을 법과 정책에 넣었다. 현재 많은 국민들이 다문화주의란 외국인 유치를 활성화하기 위해 더 않은 편의와 혜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일부 국민들이 느끼는 다문화에 대한 피로감과 반감온 용어 자체에 대한 부정확한 해석에서 비못된 것일지 모른다. 이련 생각을 할 때마다 다문화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공론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있다는 점이 늘 아쉬웠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11월 29일부터 12웝 3일까지 서울 메이필드호텔에서 개최한 제5차 글로벌세미나인 ‘다문화세계의 도전과 공존을 위한 국제적 접근: 현실, 비전 행동’ 이 반갑게 느껴졌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이번 세미나에서는 각국의 학자, 정부 관계자, 활동가, 언론인 등이 모여 다문화주의가 무엇인지,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다문화주의를 표방하는 캐나다의 월 킹리카 교수와 그렇지 않은 스위스의 크리스천 욥케 교수의 발표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언뜻 생각하면 다문화주의는 차별을 방지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과 동일시하기 쉽지만 욥케 교수는 차별 방지와 다문화주의는 다른 개념이라고 주장했다. 다문화주의는 다름과 다양성을 옹호하고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욥케 교수는 세미나에서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괜찮은 이민자들을 선택한다" 는 말을 했다. 그는 캐나다의 다문화주의가 성공한 이유도 이민자들을 선별적으로 받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청중들은 Q&A 세션을 통해 이 발언에 대해 앞 다퉈 질문을 쏟아냈다. 질의응답 시간이 흥미로웠던 점은 많은 펠로우 참가자들이 이민배경을 지니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계 미국인, 부모 중 한쪽이 한국인인 독일인, 한국에서 입양된 한국계 스웨덴인 등…. 다문화와 이민 이슈에 대해 토론이 끊이지 않았던 건 이들이 그 분야의 전문가여서이기도 했지만 당사자들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세미나내내 자주 언급됐던 ‘시민봉합’ 이란 개념은 한국에는아직 익숙지 않은 용어다. 서구의 않은 국가에선 이민자들의 다양성과 인권을 보장해주자는 차원의 논의를 넘어 시민봉합을 강조하고 있다. 이민자들에게도 자신들이 정착할 나라의 언어와 제도, 문화를 어느 정도 배우고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도록 해야 한다는 개념이다. 시민봉합이 다문화주의와 양립할 수 있느냐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세미나에서 어느 누구도 시민통합을 소흘히 여기거나 불필요하다고 여긴 사람은 없었다. 한국에 비해 일찍이 이민자의 유입이 활발했던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통합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걸 보면서 조화로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설정할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다.
무엇보다도 이번 세미나는 우리사회가 다문화주의를 어떻게 정의하며 어떤 철학을 갖고 이민정책을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이민의 역사가 짧은 한국에선 이민자들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급급하다보니 단기적인 시각으로 현상을 해석하고 정책을 만들 때가 많았다. 이렇게 한국인들끼리 다문화를 논하고 국내에서 일어나는 몇몇 문제만 단편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방향성 없이 만들어지는 정책과 이로 인한 시행착오는 지속적으로 양산될지 모른다.
이련 의미에서 일찍이 다양한 이민자들을 받아왔던 국가에서 온 참가자들의 경험과 생각을 들을 수 있었던 이번 세미나는 소중한 기회였다. 이번 세미나에서 오간 내용을 토대로 우리사회가 어떻게 다문화주의를 정의하고 이민자들을 봉합시켜나갈지는 이를 지켜봤던 국내의 학자, 정책 당당자, 활동가, 언론인 등에게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이샘물 동아일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