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어느 우울한 날, 빗방울이 성가시게 부슬부슬 떨어지고, 일터에서 얻은 스트레스가 잔뜩 쌓여 있었다. 아침 버스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고, 앉을 자리는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하루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서, 한시간 전만 해도 아직 따뜻하던 침대 위에 몸을 던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나절 일을 하고 나니,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차에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친숙한 찌개 한 그릇보다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것이 또 어디 있을까? 한국 음식은 세상 그 어떤 매운 음식보다 못할 게 없다. 김치찌개의 그 윤기 도는 붉은 빛깔, 군침 도는 냄새, 뽀얗게 올라오는 김은 오직 한국에만 있다. 그 얼큰하고, 시큼하면서도 깊은 맛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단연코, 김치찌개는 내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위안이 되는 음식이다. 부드럽게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산뜻하고 안온한 감각을 남기며, 정신을 일깨워 하루를 살아갈 힘을 준다.
김치찌개는 집에서 해 먹거나 식당에서 사 먹거나 같은 맛이 나는 법이 없다. 제각기 자기만의 레시피가 있고, 각자가 선호하는 아주 작은 무엇이 커다란 차이를 만든다. 간장을 약간 넣는다거나, 고춧가루를 입맛대로 뿌려 넣거나, 감자를 넣어 국물을 진하게 만들거나 버섯을 좀 넣을 수도 있고, 오로지 채소만 넣을 것인지, 아니면 참치나, 꽁치, 또는 그보다 전통적인 방식대로 돼지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넣을지 고를 수 있다. 김치가 주 재료로 들어가니, 이보다 한국을 대표할 만한 음식을 찾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토록 조리법이 다양하고, 특색이 각기 다른 데에다, 갖가지 개성이 있는 음식을 찾는 일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김치찌개는 스트레스를 풀기에 그만일 뿐더러 감기에 걸렸을 때 먹기에도 완벽하다. 몸이 숨쉴 통로를 열어주고 건강한 활력을 불어넣어주기 때문이다. 소주 한 잔을 걸친 어느 일상적인 한국의 밤을 보내고 맞은 아침, 김치찌개를 한 술 뜨는 시간도 빼 놓을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이다. 그야말로 딱이라는 느낌과 함께 마음은 편안해지고, 숙취마저 풀리는 것 같다. 별 일 아니어 보일지 몰라도, 술 문화가 일상생활에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나라에서 뜨거운 김치찌개 한 그릇으로 정신을 차리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김치찌개의 다른 모습을 물어본다면? 밍밍한 김치찌개를 찾는 것은 무척 힘드리라 장담한다. 당연하게도 김치의 맛이 전체적인 맛과 느낌에 아주 큰 역할을 하는데, 개인적으로 한국에 와 처음 김치찌개를 먹었을 때 너무 매워서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감히 먹는 시늉이라도 해볼까 하면,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정도였다. 이제는 매운 음식을 상당히 잘 먹게 되어서, 맵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좀 무미건조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솔직히 말해서 난 김치찌개를 먹지 않고 이틀 이상을 살 수 없다.
서울을 비롯해 한국 어디에서든 김치찌개는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엄마가 아이들에게 해 주는 것보다 맛있는 김치찌개는 결코 없다. 몇몇 한국인 친구들 집에서 먹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야말로 환상적인 맛이었다. 김치찌개를 먹는다는 것은 곧 한국 자체를 맛보는 것이다. 진실로 한식의 정수를 느끼는 것인데, 안타깝게도 너무 평가절하되어있다. 하지만 김치찌개에 한 번 빠지게 되면 삶에 흥취를 더하는 그 맛 없이 산다는 것이 너무나 힘든 일이 될 테다.
- 2014 한국어 펠로우 아리안 로마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