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두 명과 같이 추억에 묻어둔 파전을 먹었던 것은 9년 전, 숲은 울창해졌지만 장맛비는 아직 찾아오지 않은 한국의 따뜻한 초여름이었다. 짧은 일정으로 전남과 경남 지방을 무작정 다니다가 우연히 푸른 초목으로 뒤덮인 조용한 골짜기와 구릉에 걸친 녹차밭을 찾았다. 골짜기를 탐험하기에 알맞게 따뜻한 날씨였지만, 이내 그늘에서 쉬고 싶을 만큼 뜨거워졌다.
우리 앞에 오두막보다 조금 튼튼해 보이는 파전집이 나타났고, 그 안켠의 어둡고 시원해 보이는 모습이 우리를 유혹했다. 파전집에 들어가니 그 뒤편으로 바위들이 총총 늘어서 있고, 귀한 그늘을 드리우는 울창한 나무 아래로 흐르는 작은 냇물을 보게 되었다. 평온 그 자체였다.
파전이 딱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단순히 부치는 것인데도 놀랄 만큼 맛이 뛰어난 파전. 파의 톡 쏘는 맛이 기름의 느끼한 맛을 없애줘 깔끔해지고, 조금 섞여있는 김치가 짜릿하고 싱싱한 맛을 더해준다. 막걸리는 부드러운 맛과 살포시 이는 거품으로 파전과 천생연분이다.
그날 먹었던 파전이 어찌나 맛있었던지 지금까지도 그 맛이 머릿속에 추억으로 간직되어 있다. 그날 먹은 파전이 다른 파전보다 맛있었던 이유는 어떤 특별한 방법으로 만들었기 때문이 아니라 좋은 벗과 함께 조화로운 자연 속에서 먹었기 때문이었다. 끝내주는 음식의 바탕은 맛뿐만이 아니라 누구와 어디서 먹는지가 아닐까 싶다. 이런 생각은 한국의 소위 ‘먹방’이라는 유행의 인기를 설명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들었다. 비록 화면 속의 낯선 사람일지라도 식사 는 같이 먹으면 더 맛있기 때문이다.
식사는 나눠먹는 동반자만큼 또한 주변 환경도 중요하지 않을까. 옛 시인 윤선도가 수석과 송죽 그리고 동쪽 산너머로 떠오르는 달이라는 다섯 벗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냐는 반어적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당시 윤선도가 유배된 상태여서 비꼬는 것이었을 수도 있지만, 나는 그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산업화와 보다 큰 물질적 위안을 위해 내달리는 속에서도 우리는 애초부터 누려온 소중한 자연의 부귀를 간과하거나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
파전의 특별함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다. 맛있더라도 단지 맛 때문만은 아니다. 파전을 먹을 때 벗과 함께 할 수 있으며, 또한 도시를 벗어나 한국 시골의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즐길 기회도 생기기 때문이다.
한국어 펠로우
Tristan Web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