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한국-중앙아시아 에너지 자원 협력의 추진 과제와 전략
이성규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 중앙아시아 지역의 지정・지경학적 중요성 증가
최근 들어 중앙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 러시아의 유라시아경제동맹 확대, EU의 러시아 석유・가스금지 결정에 따른 중앙아 에너지 수입 증대, 그리고 미국 등 주요 핵심광물 수요 국가들의 공급 안보를 위한 양자협정 체결 등이 활발히 추진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서 중앙아 역내 및 역외 국가들을 상호 연결하는 에너지 수송망(철도, 파이프라인, 송전선 등) 건설과 역내 물류허브 구축 사업들이 계획・추진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사업들이 주로 역외 국가(중국, 러시아, EU 등)와 국제금융자금(다자개발은행 융자, 차관, 직접투자 등)에 의해 주도적으로 추진되고 있지만, 이러한 대형 투자 사업들이 성공적으로 이행된다면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활동은 크게 촉진될 것이다.
아직까지 중앙아시아 국가의 경제성장 동력은 에너지 및 천연자원의 해외 수출에 기반을 두고 있다. 현재 중국과 유럽 국가들은 파이프라인과 철도를 이용해서 역내 에너지 및 자원을 대규모로 수입하고 있으며, 이러한 거래를 향후에도 계속 안정적으로 유지하며, 더 나아가 핵심광물 및 청정에너지 분야로 확대시키려고 한다.
EU와 유럽 국가들은 2028년까지 러시아 석유・가스 수입을 완전히 중단하겠다고 결정하였고, 공급 안보를 위해 중앙아시아로부터의 수입을 가능한 빠르게 증대시키려 하고 있다. EU집행위원회와 유럽국가 정부들은 러-우 전쟁 개시 이후에 여러 차례 중앙아시아 국가들을 방문하여 카스피해 및 중앙아시아 서부지역에 위치한 석유・가스 자원 개발과 수송망 확충을 위한 협의를 진행하였다. 또한, 유럽 국가들은 탄소중립 달성과 에너지 수급 안정을 위해 청정에너지(신재생에너지, 원자력 등) 공급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핵심광물과 우라늄의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이에 유럽 국가들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핵심광물 협력 증대를 위한 협정을 적극적으로 체결하고, 역내 재생에너지(풍력, 태양광, 태양열)와 수력 자원을 개발하고 대륙간 송전선을 건설하여 청정전력을 수입하는 대규모 투자사업을 계획・추진하고 있다.
중국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를 추진하면서 중앙아시아 지역을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으로 진출하기 위한 경유지로 삼고 있으며, 그 일환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을 경유해서 중동 및 유럽을 연결하는 6대 경제회랑(economic corridor)을 구축하려고 한다. 중국은 안정적인 육상 및 해상 무역로를 구축하여 유럽과의 교역을 증대시키고, 자국의 서부지역에서 생산된 청정에너지 제품(태양광 패널, 풍력발전설비, 배터리, 전기차 등)의 수출시장을 확대하며, 그리고 중앙아시아 및 중동지역의 석유・가스 자원을 안정적인 확보하려고 한다. 중국의 일대일로 6대 경제회랑(economic corridor)에서 중앙아시아지역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신유라시아 대륙교량(New Eurasian Land Bridge Economic Corridor)과 중국-중앙아시아-서아시아 경제회랑(China-Central Asia-West Asia Economic Corridor)이다. 특히, 중국은 일대일로 이니셔티브 추진 이전부터 카자흐스탄 석유와 투르크메니스탄 천연가스를 도입하기 위해 양측을 연결하는 파이프라인 수송망을 건설하였으며, 향후에는 유럽과 인접해 있는 카스피해 연안 및 해상 지역에 있는 에너지 자원도 확보하려고 한다. 또한, 중국은 중앙아시아지역의 우라늄과 각종 핵심광물도 양측을 연결하는 철도노선의 확장을 통해 안정적으로 확보하려고 한다.
한편, 최근에 중앙아시아지역 내에서 오랫동안 국가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분쟁을 유발했던 중요 사안들이 해결되었다. 대외 개방정책을 추진하는 정권들이 들어서면서 역내 국가와의 국경획정과 개방이 점차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가장 커다란 현안이었던 카스피해 영유권 문제가 일단락되었다. 역내 물자원 이용과 관련된 상류 국가들과 하류 국가들간 협상도 국가간 정상회담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유라시아지역에서 양측 대륙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라는 이점을 살려 물류산업 발전을 통한 경제성장을 이루기 위해 국가 간에 물류인프라 연계, 물류 거버넌스 개선 등의 노력들이 나타나고 있다. 중앙아시아 국가간에 이러한 지역통합 움직임은 외국과의 대규모 투자 협력에서 매우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2. 한국 정부의 K-Silk Road 협력 구상
한국 정부는 2024년에 중앙아시아 협력 구상으로 ‘K-Silk Road’(동행, 융합, 창조)를 발표했으며, 양측 간에 공고한 신뢰와 유대를 바탕으로 한국의 혁신역량과 중앙아시아의 발전 잠재력을 연계해서 새로운 협력 모델을 창출하려고 한다. 정부는 중앙아시아 국가별 중점협력 분야를 제시했는데, 카자흐스탄과는 에너지・인프라, 미래 모빌리티, 우즈베키스탄과는 에너지・인프라, 보건・의료・교육, 투르크메니스탄과는 대규모 에너지 플랜트 건설, 키르기스스탄과는 풍부한 수자원 및 관광, 마지막으로 타지키스탄과는 ICT 기술에 기반 한 디지털 역량 강화 등에서 협력하려고 한다. 분야별 중점협력은 에너지 및 자원부문에서 에너지 자원・인프라 개발,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강화, 기후위기 대응 공조, 개발부문에서 공공부문 역량 강화, 산업화 전환 지원, 사회・경제 인프라 개선, 동반자협력부문에서 차세대 교류 증진, 쌍방향 인적・문화 교류 활성화, 고려인 동포 네트워크 확대, 그리고 추진체계부문에서 고위급 협의 체계화, 기업간 네트워크 지원, 사회문화 교류 확대 등이 제시되었다.
한국의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은 에너지 및 핵심광물과 기후변화 대응에 집중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먼저 에너지・자원 및 탄소중립부문에서 양측간 협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한국 정부는 기업들이 석유・가스 개발, 가공, 활용을 위한 인프라 건설 사업과 석유화학 관련 사업에 계속 활발히 참여하도록 지원하고, 노후 발전소 수명연장, 전력효율 개선, 지역난방 현대화 등 스마트 에너지 분야로도 민간 협력을 다변화하도록 지원한다. 둘째, 정부는 우라늄, 리튬, 구리, 몰리브덴, 텅스텐 등 다양한 핵심광물을 보유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공급망 협력을 호혜적인 방식으로 추진하며, 특히 우즈베키스탄 희소금속 상용화와 카자흐스탄 리튬을 포함한 핵심광물 개발 및 상용화를 적극 지원하고, ‘한-중앙아시아 공급망 대화’ 창설 등 핵심광물 관련 협력을 위한 제도적 기반도 공고히 구축할 계획이다. 셋째, 정부는 중앙아시아와 원전, 태양광, 수력발전, 폐기물 처리, 스마트 물관리 등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새로운 협력 사업을 발굴하고, 민관 협력 네트워크를 강화해 나갈 것이다. 넷째, 정부는 ‘한-우즈베키스탄 기후변화 협력 협정’과 같은 양자간 기후협력 협정 체결을 확대하고, 이를 기반으로 온실가스 국제 감축사업을 추진하는 등 한-중앙아시아 기후변화 협력 파트너십을 강화할 계획이다. 다섯째, 정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개발협력을 확대함으로써 신재생에너지 공급 확대, 농·축산업 기후적응력 강화, 물관리 체계 개선, 친환경 교통(그린 모빌리티) 실현, 대기질 개선, 폐기물의 친환경 분리・처리・재활용 등의 분야에서 기술협력 프로그램을 추진한다. 여섯째, 정부는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디지털 전환, 산업화 전환, 친환경 전환을 망라한 대전환을 통해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사회・경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도록 개발협력 파트너십을 강화한다. 일곱째, 정부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산업 기술자들이 양측의 산업 현장에서 전문성을 연마할 수 있도록 인력교류 기회를 제공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정부는 중앙아시아 내 교통·물류 연계사업에 참여・지원한다.
3. 청정에너지 분야에서 협력 증대 전략
중앙아시아지역에서 한국의 성공적인 에너지 및 자원 협력 사업은 우즈베키스탄 수르길 사업(가스전 개발, 가스화학공장 건설, 역내・외 시장 판매)이라고 할 수 있으며, 양측은 이러한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청정에너지(신재생에너지, 원자력) 및 핵심광물 분야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미-중 분쟁 심화로 인해 글로벌 핵심광물 공급망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유럽 국가들과 미국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청정에너지 및 핵심광물 부문에서 전주기 산업육성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핵심광물 전주기(탐사, 채굴, 가공, 활용 등) 산업을 육성하여 자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으려 하며, 이를 위해 정부와 기업 차원의 국제 협력을 확대하려고 한다. 물론 한국도 석유・가스 자원 개발, 에너지 관련 플랜트 건설, 우라늄 수입, 태양광 및 풍력 발전설비 건설 등에서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오랜 협력 경험을 갖고 있지만, 핵심광물과 청정에너지부문에서 협력은 유럽이나 중국에 비해 크게 더디고 미진한 편이다.
앞으로 한국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청정에너지 및 핵심광물 분야에서 다음과 같은 협력 사업을 계획・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민관협력으로 핵심광물 공동개발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 사업을 추진한다. 이러한 공동 조사사업을 기반으로 후속 투자사업으로 핵심광물 유망 매장지 선정, 가공공장 건설, 수송 방법・노선 모색, 수송인프라 건설, 역내・외 판매시장 확보 등을 발굴・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중앙아시아 지역 내에 핵심광물 가공 클러스터와 이와 연계한 물류허브를 구축하는 사업을 함께 추진한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역내 및 역외 물류망이 발달되어 있지 않아서 물류비용이 매우 높아서 수출경쟁력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지역 내에 핵심광물 가공 클러스터와 물류허브의 연계 조성은 핵심광물의 안정적 확보와 해외시장 접근성 제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서 중앙아시아 지역 내에 신규 광물가공 산업단지 조성에 필요한 대규모 시설(도로・철도, 전력 및 용수 공급시설, 제련소, 컨버전 설비(conversion plant) 등)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한국 기업들이 참여하고, 관련 법・제도를 수립하는데 정부가 정책 지원을 제공한다. 또한 역내에서 생산된 핵심광물 가공제품을 한국기업의 역외 공장(EU, 미국 등)에 공급하는 방안도 함께 도출한다. 마지막으로 핵심광물부문에서 중앙아시아 지역 내 교육훈련 사업을 지원한다. 중앙아시아 지역을 포함해서 전세계적으로 핵심광물 탐사가 아직까지 미진하고, 호주와 같은 선진 광업국도 탐사기술이 정립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한국은 인공지능(AI), 드론, 3D 지질모델링을 기반으로 한 선진적인 핵심광물 탐사기술을 갖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핵심광물분야에서 여러 협력 사업들을 통해 한국은 중앙아시아 지역 내 핵심광물 개발 정보와 지질자원 자료를 확보하고, 역내 대형 탐사・개발 투자사업을 발굴하고 투자 참여하는 기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앙아시아 지역은 화석연료를 활용하는 블루수소와 재생에너지 전력을 사용하는 그린수소의 커다란 생산 잠재력을 갖고 있다. 유럽은 중앙아시아 지역을 주요한 수소 공급원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수송 상의 제약으로 중앙아시아 지역을 주요한 수소공급원으로 보기 어렵지만, 현지에서 수소를 생산해서 유럽으로 수출하는 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할 수 있다. 중앙아시아 지역에 오래 전부터 진출해 있는 메이저 석유・가스기업과 중국 기업들은 수소에너지 개발과 탄소포집・저장부문에 대한 투자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한국의 블루수소 생산기업들이 중앙아시아 지역 내 천연가스 개질시설 건설 사업에 진출하고, 이를 기반으로 그린수소 생산사업으로 점차 확대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규모 에너지 및 핵심광물 투자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금융협력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이미 한국 금융기관은 중앙아시아 지역 내 자원개발 및 석유화학 분야에서 금융지원 경험을 갖고 있다. 한국은 ‘공급망안정화 기금’을 통해 중앙아시아의 자원 공급망 구축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